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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통 Apr 29. 2018

별다방 기프트카드 5만 원의 소중함

회사야 병 주고 약 줘서 고마워

적고 있습니다. 

누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덤덤히.

내가 느낀 직장과 청춘에 대해서.

그것이 때론 불편한 이야기 일지라도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더라. 

그렇게 익숙해진 늦은 아침 일어나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는다.  


잠도 깰 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문득, 


‘회사에 있을 때도 항상 이 시간쯤 커피를 마셨지’ 

하는 생각이 스친다. 


8시 출근이었던 탓에 언제나 새벽 6시쯤 시꺼먼 화면으로 눈을 떴고, 

역시 지옥철 속 시꺼먼 얼굴들 사이로 도착한 회사에선, 

팀 미팅을 시작으로 오늘 해야 할 일을 체크하며 오늘의 ‘안녕’을 기원하지만

언제나 예기치 않았던 이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짐과 동시에, 

회사 옥상에서 그렇게 줄담배를 태워댔다. 


오전부터 상무님 보고가 잡혀있으면 말 다했지 뭐.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커피 맛이 똑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굉장히 달콤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목으로 넘기는 한 모금의 커피는 여전히 쓰기만 하다. 


한 회사에서 7년 5개월이란 경력은, 

네 청춘의 대가라는 듯 어느 정도 퇴직금으로 페이백을 받을 수 있었고,  

시간이 흐르며 줄어드는 퇴직금 잔고만큼이나, 


마음의 여유도 잔고가 줄어든다. 



뜬금포 지만 나는 커피를 굉장히 좋아한다



우리나라는 1년에 인당 512잔의 커피를 마시며 커피 소비량이 세계 6위에 달한다는데, 

내가 거기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애국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체감적으로 느낀 퇴직의 온도는 바로 이 부분인데,


한 마디로 ‘별다방 커피 구경한 지 정말 오래됐다.’ 



회사 다닐 때는 대수롭지 않게 사 먹었던 아메리카노 한잔인데 말이지. 

가격표를 그다지 심도 있게 들여다볼 이유를 못 느꼈고, 

매 월 월급 통장으로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 

(물론 자연스럽다고 느꼈던 이 현상 조차 체불이 되는 비 자연스러운 회사들도 있지만) 


지금은 어딜 가도 가격표를 먼저 확인하게 되었고, 

마치 16세기 천동설이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의 입증으로  뒤집히듯, 

별다방 아메리카노 옆에 쓰여 있는 그 ‘지구의 공전’이라는 가격은 

매번 볼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가 없다. 


‘아 아주 당연시 여겼던 그게 대우주의 섭리가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요즘은 로컬 커피숍이랄까?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커피숍을 찾는다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원두를 취급하는 곳을 찾게 되고, 만에 하나 프랜차이즈를 가게 되더라도, 통신사 멤버십 정책을 먼저 확인해보게 되었다. 멤버십 포인트를 이용한 할인이라던지 무료 사이즈 업 등의 여타 혜택은 없는지 말이다. 


그러던 얼마 전 우연히 아주 귀중한 것을 득템 하게 되었는데. 


문득 자리 잡고 앉아서 퇴사 때 들고 나온 박스를 들춰보는데, 회사에서 받았던 별다방 기프트카드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남은 가격을 확인해보니 무려 5만 원! 


아니 이게 웬걸?? 


회사가 내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목마른 백수에게 하늘이 주는 한 모금의 생명수인가 싶기도 하고. 

마치 옛 연인과 주고받았던 연애편지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나에겐 5만 원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듯 쓰기엔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잠시, 

금세 아주 당당히 별다방을 찾는다. 



딱히 하루하루 거취가 불분명해진 지금



회사에서 받은 5만 원의 기프트카드는 커피숍을 사무실 삼아 전전긍긍하는 내게는 정말 최고의 소확행이지. 

암 그렇고말고. 


퇴직금 잔고는 물론 별다방 기프트카드 등 나날이 줄어드는 숫자들 만큼이나 

회사랑 나 사이는 이렇게 또 멀어져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이래서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이 있나 싶기도. 


이제는 태양이 지구를 돌든 지구가 태양을 돌든 상관없다. 

커피란 것은 원래 쓰다는 걸 알았으니. 



재직 당시엔 고맙다는 이야기를 별로 못 해본 것 같은데, 

이렇게 별다방의 여유를 선물해준 회사에게 이제라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회사야, 병 주고 약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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