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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군 May 03. 2018

도시탈출

서울생활 30년,

시골생활 2개월차

돌고도는 직장생활에 대하여




직장인 3년 차.


사회에서 나의 위치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피라미'였지만,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고뇌하는

직장인 오춘기가 찾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냐?"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이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까?"


두어 달이 넘도록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지만,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자주 찾아오는 슬럼프에

몸과 마음이 충분히 지쳐 있었다.


'성공'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를 텐데,

나에게는 그 기준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고민이 많을 때 딴생각은 왜 그리 잘 하는지…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서울 부부의 귀촌일기'를 접하게 됐다.


결혼 5년 차 30대 부부가

도시생활의 막막함을 느끼고

무작정 충청남도 부여에 위치한 마을로

이사를 가면서 자신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 푸르다"


1화에서 시골로 거주지를 옮긴

부부가 내뱉은 한 마디가 마음을 울렸다.


오랜 기간 방치된 집을 수리하고,

집 앞 텃밭을 가꾸고, 뒷산에서 버섯을 캐는 등

자연과 동화되는 삶이 아름다워 보였다.


감사하게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지닌 여자 친구 덕분에

우리는 귀농귀촌 생활을 꿈꾸기 시작했는데,

그 첫 단추가 되어줄 만한 일들을 알아보던 중

영등포구청에서 진행하는

'도시농부학교'를 알게 됐다.


(뭔가 마음을 먹으면 그것과 관련된 것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2017년 4월부터 2017년 7월까지

도시농사에 관한 이론과 실기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귀농귀촌 생활을 준비할 겸,

데이트를 할 겸,

취미생활을 할 겸,

여자 친구와 함께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고층 빌딩 숲이 우거진 서울 한복판에서

유기농으로 나의 텃밭을 가꿀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봄비가 그치고 화창한 4월,

첫 수업이 시작됐다.


백발이 무성한 할아버지부터

원예를 좋아하는 어머니,

동내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신 아버님 등등

약 20명의 사람들과 함께 텃밭을 가꿨다.



겨울을 지낸 휑한 텃밭이었지만,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텃밭의 흙을 한 움큼 쥐었는데

무엇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내가 흙을 만져 본 지 꽤 오래됐구나’


쏟아지는 업무에 몸은 피곤했지만,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진행되는

도시농부 수업은 빼먹지 않고 참석했다.

오히려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다.

(빨리 끝내고 배우러 가야 하니까!)


그렇게 4개월이란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평소에 등산도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는데,

자연과 가깝지 않은 나였는데,

농사에는 관심도 없던 나였는데,

매주 텃밭에 갈 날을 기다렸다.

(매일 텃밭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송골송골 땀을 흘리며 밭을 가꾸고

휑했던 땅에서 작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풍성하게 자란 수확물을 보면서


내가 원하는 삶,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조금씩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오랜 겨울을 보낸 단단한 흙에서

새로운 새싹이 자라나듯이

나의 미래를 경작하기로 했다.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그리고 차근차근히…


그렇게 2017년 서울에서 삶을 정리하고

2018년 나는 숨 가빴던 도시를 벗어나

충청남도 홍성에서 나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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