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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Sep 13. 2018

세심하게 빛나는 등불, 윤가은

people column

Intro

당신은 어쩌면 ‘윤가은’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두 편의 단편작업 후 2016년 자신의 첫 장편영화 <우리들>이 전국 10만 관객을 만난 것이 아직은 윤가은 감독 필모의 전부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 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날이 올 테니까.


충무로의 등불

이름도 거창한 쌍천만 영화가 나오고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충무로의 대체적인 상황은 결코 밝지 않다. 기시감 넘치는 상업영화들은 적당한 손익분기점을 목표로 하며 관객들의 피로감만 늘려갈 뿐이고 각종 사회문제를 얘기하는 독립영화들은 소재의 무게에 비해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와중에 윤가은이 선보인 두 편의 단편영화, <손님>과 <콩나물>은 충무로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청소년과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편의 영화는 익숙한 소재와 배경에서 깊이 있는 울림을 이끌어내며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는 한편 <콩나물>의 경우 기어이 베를린영화제에서 수정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이후 2017년 개봉한 장편영화 <우리들>은 단편이 가지고 있던 장점을 고스란히 계승한 스토리텔링과 정제된 연출로 윤가은에게 청룡영화제 신인상, 부일영화제 신인상 등을 안기며 그녀가 충무로를 밝힐 새로운 등불임을 증명해냈다.

베를린영화제


배우의 등불

윤가은 감독이 빛나는 이유는 단순히 신인 치고는 화려한 수상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윤가은 감독은 배우가 가야 하는 방향을 밝혀주는 감독이기도 하다. 지금은 많은 관객들에게 익숙한 2006년생 김수안 배우는 <콩나물>에서 그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혹은 그 나이에만 가능한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다. 이후 <우리들>에 출연한 최수인, 설혜인, 강민준 등 주연진은 <우리들>이 데뷔작이었음에도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고작 초등학생에 불과한 배우들이 바짝 외운 대사를 선보이는게 싫었다는 윤가은 감독은 오디션이 아닌 30분 동안의 1:1대화를 통해 <우리들>의 주연진을 캐스팅하는가 하면 영화를 찍는 내내 반드시 대사를 외워야 하는 장면이 아니라면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배우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촬영했다고 한다. 배우의 잠재력을 최고치로 끌어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이끄는 빛, 윤가은 감독이 배우의 등불인 이유다.

배우들과 윤가은


관객의 등불

앞선 작품들에서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이야기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윤가은 감독은 자신의 눈높이를 아이들에게 맞춤으로써 누구나 공감할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탁월한 능력을 선보인다. 단편부터 장편까지 그녀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항상 아이들이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모든 세대의 마음을 건드릴만큼 깊고 묵직하다. 화려하거나 신선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윤가은의 화면연출은 뜯어볼수록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는데, 음식에 비유하자면 항상 먹는 밑반찬이지만 맛있는 김치 같다고 할까? 반면 다채로운 것은 물론 놀라울 정도로 의미를 담아 사용되는 각종 소품들과 자연스럽게 정곡을 찌르는 아이들의 대화는 지금껏 충무로에서 보지 못했던 새롭고 신선한 스타일이다. 이처럼 자신만의 강점들로 빛나는 윤가은의 연출에 관객들은 등불을 따라 걸어가듯 조심스럽게, 하지만 즐겁게 영화를 여행한다.

GV중인 윤가은


세심하게 빛나는 등불

충무로부터 배우, 관객들의 길까지 환하게 비추는 윤가은 감독은 아직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더 많은 감독이다. 그러나 갈 길이 먼 만큼 항상 그 빛이 강렬하기만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등불은 단순히 빛나는 등화를 의미할 뿐 아니라 앞날에 희망을 주는 존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때로는 희미하고, 예상치 못한 흔들림이 있을지라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윤가은이라는 등불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우리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희망을 보게 한다는 사실이다. 불빛이 필요한 곳을 세심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비추는 이 불빛이 오래도록 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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