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review
상업영화인지 아닌지, 사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경차를 만들어도 기함급을 만들어도 벤츠가 만들면 모두가 그 차를 벤츠급으로 인정한다. 박찬욱은 그런 존재다. 아가씨가 상업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정의는 무의미하다. 아가씨는 박찬욱이 만들었고 그래서 이 영화는 박찬욱급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때부터 그랬다. 박찬욱의 영화치고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 영화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오묘하게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 같다.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관객은 '박찬욱 존'에 들어간다. 거기서부터 이미 감독은 우월한 위치를 점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이 오묘하게 흘러든다. 아가씨도 많이 다르지 않다. 아가씨의 배경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어느 한 부분의 조선과 일본이다. 그런데 뭔가 몽롱하다. 건물, 의상,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안개를 내뿜는 듯 배경을 만든다. 자연스럽게, 하지만 깊이 있게. 박찬욱은 분명히 거장이다.
이런 류의 연출이나 서사적 흐름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꼭 새로워야 좋은 것은 아니다.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가장 알맞은 서술의 방법을 입는다면 그때 이야기는 최고가 된다. 개인적으로 아가씨는 영화에 담긴 이야기가 표현되기에 가장 알맞은 서술법을 입었다. 각자의 시각이 넘어갈수록 관객들은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쾌감에 빠진다. 한국 관객들은 '반전'이라는 표현방법의 함정에 자주 빠진다. 반전은 반전 자체로 빛을 발하지 않는다. 그 반전이 가장 멋지고 유려하게 표현되어야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아가씨처럼.
아가씨에는 기라성 같은 배우 4명이 등장한다. 하지만 김민희의 얘기를 따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아가씨에 김민희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김민희는 제목이 다 담아내지 못하는 아가씨 그 자체를 보여준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순수하다가도 소름 돋게 행동하는, 그녀의 말투, 행동, 존재 자체가 영화 전체를 이끈다. 특히 몇몇 장면에서 그녀의 연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김민희 그 이상이다. 필자는 아가씨로부터 김민희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김민희와 다른 지점에서 김태리가 놀라운 이유는 그녀가 장편 출연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첫 장편에서 김민희와 하정우 같은 선 굵은 배우들과 함께하기에 분명히 쉽지 않았을 터인데 김태리는 자신의 몫을 백분 발휘한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 반면 하정우와 조진웅은 뭔가 놀라운 연기였다기 보다는 원래 그들이 잘 하던, 그것 그대로를 보여준다. 두 배우는 완전히 반대되는 지점에서 영화의 분위기가 너무 진중하지도, 너무 가볍게 흘러가지 않도록 밸런스를 잡는다. 확실히 연륜이 없다면 함부로 할 수 없는 연기.
박찬욱, 김민희, 화려한 조연진들. 분명히 아가씨의 완성도를 높인 조건들이다. 하지만 아가씨에 또 다른 주연이 있다. 바로 의상부터 건물까지 디테일을 극상으로 살려낸 아가씨의 미술팀이다. 한국에서 미술팀이 칸 영화제 벌칸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미술, 음악, 연출 등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이룬 영화에 주는 상) 그만큼 아가씨는 미장센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 뛰어난 배우들과 영화를 만들어도 배경이 엉망이고 의상이 거적때기라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결코 공감을 끌어낼 수 없다. 아가씨의 미술팀은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할 만큼의 퀄리티를 이뤄냈다.
아가씨는 이번 여름 가장 많은 관객들이 기다려온 한국영화 중 한편이다. 그리고 필자는 아가씨가 소문 값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편 많은 관객들의 입에 오르고 있는 배드신의 표현 수위 여부는 감독의 영역이라는 생각이다. 감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삭제했을 것이고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만큼을 표현할 수 있다고 여기기에,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아가씨에 표현된 수위 자체도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꽤 어울렸다는 생각. 아가씨는 결론적으로 배드신과 동성애적 소재라는 이슈성 소문으로만 소모되기에는 아까울 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