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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Oct 29. 2019

벌새, 의미 있는 날갯짓

special column

Intro

한국영화 100년, 의미 있는 상업영화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있다면 독립영화에는 아마도 국내외 영화제 34관왕에 빛나는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뽑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전 세계를 사로잡다

이번해 <벌새>가 수상한 상의 개수, 34라는 숫자의 절대적 크기도 엄청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무게감이다. <벌새>는 베를린, 런던, 뉴욕, 시애틀, 부산, 서울 등 말 그대로 전 세계에서 수상 릴레이를 펼쳤다. 특히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는 최우수 국제장편영화상의 영광은 물론 여우주연상과 촬영상 등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봉준호 감독의 20년 정수와 함께 100억여 원이 투자되어 탄생한 <기생충>이 이뤄낸 성과도 대단하지만 3억 원으로 제작된 김보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벌새>가 이뤄낸 성과는 이 영화를 한국영화 100년 역사가 꽂은 하나의 이정표로 보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게 만든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국내에서의 성적

국내외 수상실적은 영화 홍보와 감독의 경력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산업예술인 영화는 흥행성적에서 희비가 갈리기 마련이다. 2019년 8월 29일 개봉한 <벌새>는 10월 29일 현재 132,830명의 관객을 모아들이며 영화의 손익분기점으로 예상되는 10만 명 수준의 관객은 안전하게 넘어선 상태다. 또한 5만 명 정도의 관객이 들면 성공한 것으로 보는 국내 독립ㆍ예술영화시장의 특성상 <벌새>는 대단히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박스오피스로 시야를 확대해도 <벌새>의 관객수는 결코 적지 않다. 2019년 개봉한 독립ㆍ예술영화 중 <벌새>위로 위치한 영화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유일하다. 총 관객 1,157,887명을 모아들인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절대적인 관객 수치에서 <벌새>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봉일 730개의 스크린으로 시작해 개봉 주말 최대 스크린을 1,094개까지 확보했던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 비해 <벌새>가 개봉일 145 스크린으로 시작해 개봉 주말 최대 스크린 183개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하면 역설적으로 <벌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실감케 만든다. 조금 더 나아가 현재 서울 전체의 상영관 스크린 수는 600개, 전국 스크린의 개수는 3,128개 이므로 <벌새>는 서울에서만 개봉했다고 가정해도 스크린 수의 24%도 채우지 못한 채 개봉해 지금의 업적을 달성했다.

배우 기획전  현장


업적 뒤의 그늘

대부분은 이쯤에서 <벌새>의 날갯짓이 퍽 성공적이라는 결론을 맺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19년 2월 개봉한 <자전차왕 엄복동>을 기억하는가? 다양한 이슈는 물론 부족한 영화의 완성도로 많은 관객들의 혹평속에 빠르게 사라진 작품이다. 대단히 불명예스럽게도 관객들은 이 영화가 기록한 관객수를 일종의 측정수치마냥 1ubd(엄복동의 앞글자를 딴 스펠링이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1ubd는 17만 명이다.(더 정확히는 172,212명) <벌새>가 현재 기록한 13만 명의 관객보다 약 4만 명이 더 많은 관객수로 지금 <벌새>의 남아있는 상영관으로는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없는 수치다. 그럼에도 언론과 업계 사람들은 <벌새>의 '성공'을 얘기한다. 나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지금의 이 상황이 불편하고 안타깝다. 왜 전 세계가 열광하고 관객들이 극찬하는 영화임에도 <벌새>는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까? <벌새>가 국내외에서 수상한 수상실적과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업적이지만 국내에서 <벌새>가 만난 관객수는 충무로가 여전히 간직한 그늘이다.

충무로의 그늘


더 높이 날기를

개봉일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영화산업의 특성상 무턱대고 독립ㆍ예술영화의 상영관을 늘려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또한 독립ㆍ예술영화라고 해서 항상 의미 있거나 높은 완성도를 가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기에 <벌새>같이 작지만 귀중한 영화들을 상영관에서 보기 위해서는 관객들의 선택이 중요하다. 더 많은 관객들이, 더 자주 이런 영화들을 상영관에서 선택해주는 것은 단순히 손익분기를 넘겨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벌새>는 그런 관객들의 염원을 담아 힘겹지만 의미 있는 날갯짓을 이어가고 있다. <벌새>가 관객들과 함께 앞으로도 더 높이, 아름답게 날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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