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review
내가 아끼던 작은 물건 하나가 없어져도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작지 않다. 하물며 내가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을 때의 고통이라면 그 깊이는 감히 측량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심연의 깊은 고통에서 다시 소통으로 나아가는 것이 결국은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조용하고 덤덤하다. 어떤 사람은 지루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어딘지 닮아있는 각본은 서서히, 하지만 강렬하게 관객들의 가슴을 두드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감정, 그리고 때로는 서로 부딪히고 상처를 주면서도 끝내는 소통 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루하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깊이 있고 시리게 파고든다. 극 중 주인공 두 명이 함께 걸어가다가 한 명이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오는 장면이 무심하게 연출되고 굳이 중요한 대사가 오고 가지 않고 그냥 그 둘은 걸어간다. 그렇다. 감독은, 그리고 각본은 그냥 그렇게 우리 삶의 한 페이지를 화면에 올려둔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순간에 의미가 부여되지 않더라도 그저 그렇게 인생은 또다시 흘러간다. 그렇게 영화도 흘러간다.
케이시 애플렉은 사실 형인 벤 애플렉의 화려한 활동에 비해 많이 조명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그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모든 것을 토해내듯 연기한다. 이미 골든글로브를 포함한 8개의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케이시 애플렉은 27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매우 강력한 수상 후보다. 극 중 상실감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책임감 또한 느끼는 리 역을 연기한 케이시 애플렉은 평범하면서도 다채롭고, 극단적인 동시에 평점심을 요하는 모든 장면에서 놀랍도록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편 크리틱 초이스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또 다른 주연 루카스 헤지스는 반항기 있지만 소통을 위해서 노력하는 조카 패트릭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특히 몇몇 장면에서는 앞으로의 연기가 기대되는 멋진 연기를 선보인다. 이 두 명이 선사하는 평범한 두 남자의 소통과 충돌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각본이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삶을 얘기하는 영화에서 플래시백은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역시 주인공 리 의 회상씬이 자주 등장한다. 리는 아주 안정적이지는 않아도 행복했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지금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들을 마주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었던 서사의 진행에 작은 물방울을 튀기며 관객들이 리의 감정에 조금 더 친밀히 다가가도록 인도한다. 비록 연출 자체는 매우 훌륭하거나 특별하지 않았지만 리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느껴지는 변화, 그리고 과거와 현실의 비교, 한편 그 안에서 등장하는 패트릭의 감정까지 어렴풋이 느껴지게 만든 플래시백의 서사적 도구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된 것 같다.
영어 표현 중에 'Life goes on'이라는 표현이 있다. 직독직해가 애매한 일종의 숙어인데 뜻을 풀이하자면 '삶은 계속된다.' 정도가 된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상처와 상실의 순간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혼자 견디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견뎌나간다. '함께'라는 단어는 따뜻한 단어이지만 그 실상은 항상 훈훈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격한 충돌과 불신, 그리고 서로의 가치관에 따른 일방적인 오해 또한 '함께'에 포함된다. 이렇게 아픈 순간들, 그리고 마냥 쉽지만은 않은 회복과 소통의 순간들이 지나고 지나서 결국 삶은 또 그렇게 계속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의 모습을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