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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내기 권선생 Apr 29. 2024

야간 코인 세탁소 사건

 또다시 세탁의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수하물을 추가하지 않아 한정된 옷으로 생활했기에 세탁의 때가 빨리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짐을 쌀 때를 생각해 보면, 기내의 최대 수하물 무게에 맞추기 위해 겉옷 같은 큰 짐부터 안대 같은 아주 사소한 물건까지 덜어내기에 바빴다.

 

 그 사건이 벌어진 날, 새벽부터 시작된 컨딩 투어 일정으로 상당히 피곤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세탁을 하지 않는다면 당자 내일 입을 옷이 없었다. 그래서 오후 10시라는 늦은 시간임에도 나가야 하는 선택지 외에는 없었다. 또 여행지에서 슬리퍼와 편한 복장으로 세탁물만 달랑 들고 산책 나가는 경험 또한 꼭 해보고 싶었다.


피곤한 표정과는 상반된 말투로 친구에게 제안했다. "우리 더 늦기 전에, 얼른 세탁하러 갔다 올래?" 그런데, 어딘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귀찮은데..". "혼자 까지 같이 다녀오면 안 돼?"


기분 나쁜 말투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귀찮다'는 그 한 마디에 김이 샜다. '이게 그렇게 귀찮을 건가' 그 말을 곱씹을수록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 자기 것까지 나한테 해달라고 하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상했지만, 같이 즐겁게 여행 온 이 상황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생각했다. 그러게 겨우 찾아 내뱉은 말은 "내가 네 심부름꾼은 아니야"였다.


 결국, 친구는 같이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코인 세탁소를 향하는 길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굳이 노트북을 손에 꼭 쥐고 가는 친구를 보며 "나 혼자 갈게" 하고 말했지만, 굳이 따라오겠다는 친구를 말릴 수 없었다.  


 그런데 도착한 코인세탁소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작아,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친구는 무표정으로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에 앉아 허리를 굽혀 노트북을 켰다. 약 30분쯤 지났을까. 다시 한번 정말 괜찮으니, 숙소로 돌아가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친구를 보내고, 건조 완료 시간까지 남은 시간 1시간 30분. 거리를 나서고 싶어졌다. 타국에서 혼자 밤거리를 걷는다는 게 꽤 무섭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대만은 안전하다'라는 문장을 되새기며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거리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마침 조금만 나가 보니, 야시장이 있었다. 맛있는 먹거리와 재미있는 게임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웃는 얼굴과 즐거운 말투로 가족과 친구와 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음 한편을 찔리게 했다. 


혼자 계속 걷다 보니 그제야 한국에서 친구가 했던 말과 여행지 내내 친구가 했던 말들이 올랐다. 친구는 여행지 내에서 마무리지어야 하는 문서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노심초사하며 밤늦게까지 숙소에서 노트북으로 문서 작업 잠자리에 들곤 했다. 


숙소로 들어가면 몰라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했다. 그런데 숙소로 들어오니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나 대만 여행이 이렇게 힘들지는 몰랐다?" 친구는 타이베이를 벗어나면서부터 여유로운 여행을 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논문을 타이중과 가오슝에서 마무리지으려 했다고 했다. 


 그제야 내가 타이중, 가오슝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너무 일정을 빡빡하게 짰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오는 지역에 설렘만 가득해, 쉴 새 없이 가자고 졸라댔던 지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진작, 이렇게 말해줬다면 당연히 혼자 갔을 텐데.' 앞 선 우리의 대화에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대인 관계에 서툴렀다.


솔직하게 상황을 전달하는 용기가 부족했고, 한걸음 물러서는 마음이 부족했다. 친구에게는 개인 일정으로 스케줄을 조정해 주면 좋겠다고 말할 용기가, 내게는 조금 더 타인을 배려하고 돌 볼 마음이 필요했다.


여행은 스스로 외면하고 있던 나의 이면을 발견해주게 한다. 꽁꽁 숨겨왔기에 내 성격은 아닐 거라는 오판. '여행으로 성장한다' 는 게 이런 말일까.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스스로에게 더 단단해지고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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