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臺北), 타이중(臺中), 가오슝(高雄), 컨딩(墾丁).
많은 곳을 둘러보면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무지개’였다. 여행 중에 만난 무지개의 풍경은 단연 장관이었다. 타이베이 시먼딩(西門町)에서의 무지개는 더 특별했는데, 바닥을 거대하게 장식한 그것이 시먼딩을 온통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무지개의 알록달록함은 시내의 활기참을 더하고 있었다. 우리를 비롯한 관광객들은 줄지어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다. 그 옆에서는 댄스 크루가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무지개의 큰 의미를 알지 못하고 관광의 일부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 할수록 무지개는 더욱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숨은 무지개 찾기’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무지개는 그저 종이에 칠해진 그림에만 지나치지 않았다. 원피스, 목도리, 깃발, 기둥, 벽까지. 다양한 곳에서 다채로운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우리는 무지개의 매력에 사로잡히면서 대체 이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상징, 문화를 알게 된다면 여행의 즐거움이 더 커질 것이라 믿으며, 검색 포털을 켰다. 그리고 시먼딩의 무지개 도로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었다.
인권 존중, 성평등, 중립, 생명, 치유, 햇빛, 자연, 예술.
다양한 상징들이 뒤엉켜 서로의 메시지를 빛나게 하고 있었다. 이제야 이 무지개 도로에 대한 관점이 새로워졌다. 우리는 ‘혐오’라는 왜곡된 방식으로 분노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풀어내고 있다. 숨겨진 슬픔 뒤로, 무지개로 얼룩진 자유가 비쳤다. 실은 우리가 무심코 들렀던 초등학교 건물에서도 무지개가 그려져 있었다. 대만은 인간 존중과 차별 없는 사회의 중요성을 공교육을 통해 가르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인권 교육조차 부족한 게 현실이다. 교실 내에서도 비아냥거리는 표현으로써 혐오를 아주 자연스럽게 뱉어낸다.
학창 시절, 반에서는 유독 얼굴이 하얗고 수줍음이 많은 친구가 있었다. 그를 향해 누군가가 ‘게이 같다’는 말을 던졌다. 그걸 목격한 선생님이 그런 기분 나쁜 말이 어딨냐, 며 핀잔을 주었다. 물론 조롱당한 친구를 보듬어주고자 한 말이었겠지만, 그 속에는 다소 혐오스러운 감정이 복합되어 있었다. 위로의 의도는 충분했으나 그 방식은 어딘가 부족하고 안타까웠다.
대만에서 무지개의 의미를 알게 되자 과거의 기억과 겹치며 색다른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미처 생각할 수 없었던 가치를 대만에서 몸소 느꼈기 때문이리라. 무조건적 배척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포용. 그것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참사랑의 노력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다르더라도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손가락질하는 손을 거두어, 그 손으로 비난받는 자를 포옹할 수 있다면. 아쉬움이 무지개 위로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