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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선생님의 초등학교 탐험기

by 새내기권선생

스쿠터를 포기하고 느린 걸음으로 걸으니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 안에 들어왔다. 유람(遊覽)이란, 여기저기를 둘러본다는 의미이니, 흘러가는 대로 방방곡곡 유람을 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빠르게 달려온 속도를 내려놓지 못한 채 여행을 나서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시, 분 단위로 쪼개어 계획을 세웠으니까. 그런데 인생의 변수라는 게 언제나 호시탐탐 도사리는 것이라서, 어차피 여행이 제 뜻대로 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유연하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현지 사람들의 일상들―빨래를 널고,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며 얘기를 하고, 소소하게 웃고―의 풍경 속에서 나는 둥글지만 규칙 있게 살아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었다. 골목마다 피어나는 이웃 간의 정, 시끌벅적한 거리, 형형색색의 스쿠터 무리들…. 모든 낯섦이 내 안으로 몰려 들어오자, 여행의 시선들이 새로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중 건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무척 겸손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명백한 표기가, 다 낡아서 누렇게 바랜 벽면 사이로 비쳐 보였다. 건물과 사람. 사람과 건물. 이어지는 고리 속에 나는 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넓고 웅장한 입구 너머에 있었다. 정교하게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은 위압감마저 주었다. 흡사 박물관이나 기념관, 그도 아니면 공연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입구 옆에 검은색 명패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Chung-hsiao Elementary School’

다름 아닌 이곳은 초등학교였다. 우리가 한국에서 보아온 초등학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육중한 회색 철문, 그 앞에 붙은 경고 문구. 우리도 마찬가지로 꽤 규모 있는 학교 시설이 거대함을 휘감고 있었다. 대만에서의 초등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문득 호기심이 일어났다. 휴대전화 속 구글 지도 앱을 켜서 이곳을 펼쳐 보니 100개 정도의 평점이 달려있었다. 친구는 여기까지 와서 뭘 그런 걸 보냐고 말했지만, 나는 직업병을 버리지 못하고 리뷰들을 하나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대만에서도 한국 못지않은 교육열이 있기에, 우리와 닮아있는 점들을 관찰하고 싶었다. 질 좋은 교육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학생, 학부모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교사들. 모두에 대한 긍정적인 리뷰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어딜 가나 반대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여기에도 공격적인 말투의 댓글이 쓰여 있었다. 버스에서 소란을 피우는 학생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다면서 온갖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학교에서 공공 예절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어디까지 책임을 짊어지는 게 옳은 걸까? 모든 학교는 작은 사회다. 당연히 공공 예절을 지킬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학교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한국에서는 ‘도덕’이라는 과목을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울 만큼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선을 제대로 배운다. 대만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이렇게 질서 정연한, 단정한 나라에서. 분명 교사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교훈을 가르쳤겠지. 소속 학생이 버스에서 큰 소리를 내었다고 해서 작정하고 달려와 그야말로 악플 테러를 쓴 이는 대체 무슨 심보일까. 차라리 학교에 전화해 올바른 계도를 요청하는 쪽이 그에게도 더 나은 편이었을 텐데.

또 다른 글은 교사와 학생을 비하하고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시설이 초라하다고 쓰여 있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쓰여 있지 않았다. 이 한 줄로 학교의 품격을 격하시키고 있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연거푸 이어지는 비판 세례에 나는 기분이 퍽 나빠졌다. 이것은 교사로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인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 해 전, 우리는 크게 이슈가 되었던 초등교사의 죽음을 알고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교사의 극단적인 선택. 죽음의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한 생명이 목숨을 끊었고 상식을 뒤흔드는 사건이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특수학교 교사의 죽음, 다른 지역 교사의 죽음……. 얼마나 많은 교사가 희생되고 있는지 우리는 뉴스를 통해 수없이 들어왔다. 그런데도 학교에 대한 비난조의 민원은 끝이 없다. 누군가 죽어도 끝이 나지 않는 이 씨름이, 나는 참을 수 없이 괴롭다. 나 역시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만, 언제든지 이런 민원을 받을 수 있으니 출근할 때마다 긴장선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교문 너머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쉬는 시간인 것 같았다. 나는 의연한 척 학교를 지나쳤다. 기나긴 학교의 담벼락 너머로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유람’이 일상 속까지 파고든 것 같아 조금은 편안하지 않은 감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어쩐지 이 보드라운 바람처럼 좋은 방향으로 풀어나갈 거라고, 이 여행이 위로를 건네주는 듯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목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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