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나 첫 숙소의 곤욕을 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생 때만 해도 여행을 하면 누구와 어디에 머무르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는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사적인 공간은 단순히 먹고, 자고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장소에서 좋은 컨디션, 그러니까 여행하기에 적합한 상태로 회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낯선 이들과 어딘가를 공유하는 게스트하우스만큼은 무조건 피하고 싶었다.
이번 숙소는 나름 거금을 들였다. 호텔은 4성급이었다. 직전의 실패로 상당히 긴장되었지만, 이번에는 호텔의 등급이 높으니 꽤 괜찮을 거라 믿었다. 허나 문을 열고 보니 실망감이 물결처럼 밀려 들어왔다. 어딘가 좁아 보이는 방안은 ‘답답하다’라는 말과 적당히 어울렸다. 방음이 되지 않는 것도 정말 큰 문제였다. 새벽을 두드리는 물소리 때문에 잠을 전혀 이룰 수 없었다. 하수구를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가 매우 거슬렸다. 하수구 구멍을 수건으로 틀어막았다. 다시 침대에 몸을 누였다. 그러자 몇 분 뒤, 기상을 깨우는 알람이 울렸다.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조식은 진심으로 입맛을 뚝 떨어뜨리려고 만든 것만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토스트와 우유만을 먹었다.
숙소의 기대들이 깨어지면서 나는 휴식을 간절히 원했다. 새로운 숙소는 그런 기대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우디한 향, 앤티크한 인테리어, 분위기 좋은 클래식 음악, 풍성한 조식. 성급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한 호텔은 그야말로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숙소를 고르거나 숙소에 만족하는 주관을 서로 다를지언정 이 호텔만큼은 모두에게 진정한 휴식을 선물하고 있음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나는 까다로운 여행객이 아니다. 사적인 휴식을 즐길 수만 있다면, 숙소 측에 클레임을 걸거나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휴식을 취하지 못할 때는 몸과 마음이 상당히 힘들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나의 취향에 대해서 새로이 알게 되는 과정을 밟는다고 여긴다. 나의 주관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신비롭고 즐겁다. 비록 몸은 피곤할지언정.
취향에 관해서라면 교실에서도 할 말이 있다. 학기 초마다 쓰는 자기소개서. 그것에 자기 자신에 관하여 빼곡히 채워 가야 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취미, 장래 희망 등 다양한 항목을 채워가면서 다들 큰 고민에 빠진다. 여태껏 자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이들은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도 자신에 대한 글을 하나씩 쓰기 시작한다. 정도는 다르지만, 제법 긴 글을 쓰면서 평소에 해왔던 고민의 답을 스스로 정리해 나가는 녀석도 있다. 참으로 기특한 일이다. 그러다가 한 시간이 지나도록 대답을 다 쓰지 못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연필은 ‘취미’ 란에서 멈춰 있었다.
“우리 ◯◯이는 어떤 걸 할 때가 가장 즐거워요?”
“… 잘 모르겠어요.”
“어려운 게 아니에요. ◯◯이가 했던 것 중에서 가장 즐거웠던 경험 한 가지만 적으면 되는 거예요.”
“음……. 즐겁게 해 본 게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마다 경험의 차이가 있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세심하지 못했던 실수였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한 경험이 부족했을 것이다. 아마 이 아이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자신 있게 발표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상당히 위축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아이에게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필요한 격려와 응원이 더해져야 했다. 나는 마음 깊숙이 아이를 응원하면서, 질문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함께 채워 나갔다.
이 작은 교실에서조차 취향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참 쉬운 게 아니다. 아이가 내 나이쯤 되었을 때는 나처럼 취향의 숙소를 찾고, 나를 알아가는 탐색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고유함이 고여있는 지점을 알고, 자신의 고유함을 깨닫고, 세상을 향해 그것을 펼쳐나가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인지 꼭 알았으면 한다. 여행이란, 나를 찾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