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순천만' 아니고요, '대만 고미습지'입니다.

by 새내기권선생

오래도록 가고 싶었던 타이중(臺中). 그곳은 아직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중 ‘고미습지(高美濕地)’는 ‘아시아의 우유니 사막’으로 불렸다. 고미습지는 도심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탁 트인 지평선과 해 질 녘의 붉은 하늘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고미습지에 대해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호기심이 더욱더 커져만 갔다. 제아무리 스타벅스에서 힐링을 했다 한들 여행지에서 익숙한 것으로만 모든 일정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투어가 시작되는 날. 한 시간의 긴 이동 끝에, 드디어 고미습지와 마주할 수 있었다. 풍차가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무섭게 휭휭 돌아가고 있었다. 그 아래를 지나면서 어쩐지 공포감이 들기도 했다. 위로는 구름이 풍성하게 쌓여 있었다. 그때 구름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오고 있었다. 하늘도 우리의 여행을 안타까워했나 보다. 습지 뒤편의 바다가 너울거리며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검푸른 파도가 습지를 간질이며 영롱하게 빛났다. 짭짤하지만 따스한 공기가 바람을 타고 불어왔다.

풍경을 바라보는 게 조금 지루해질 때쯤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눈앞으로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를 자꾸만 바라보고 있자니, 인생의 모든 기억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지난한 시간들은 침묵이 되었고 그저 평화만을 말하고 있었다. 침묵. 나는, 친구는, 고요함을 배경으로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때 새털구름이 제각각의 속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빠르기도 했다가 느리기도 했다가 하며. 그렇게 하늘은 순식간에 구름으로 뒤덮였다. 벌써 투어가 끝난 것인가 싶어, 우산을 꺼내면서도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 중 누구 하나 벤치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흐린 날씨마저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고미습지. 출처 : kkday 홈페이지 (고미습지 투어)


구름으로 가득차기 시작한 고미습지


그러던 중 휴대전화의 알람이 떴다. 인스타그램 DM이었다. 발신한 이는 친구였다.

‘……월정리?’

그는 익살맞은 이모티콘 하나도 덧붙였다. 투어를 망쳐버린 것만 같은 이 상황에서, 친구에게까지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월정리라니. 우리는 바다 건너 대만까지 왔건만, 한국의 월정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니.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자줏빛 하늘에 구름이 흩어지며 장관을 드러냈다. 달리 생각해 보면 월정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역시 고미습지에 도착하면서 제주도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게 사실이다. 따스한 날씨, 적당한 온도. 중국어가 쓰여있지 않았더라면 결코 이곳이 대만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곳이 우리나라의 풍경과 비슷하다는 말에, 기분이 상하고 있었다. 유류비, 숙박비, 그 외의 경비까지. 거금을 들여 대만까지 왔건만,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은 정곡을 찔렀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행을 통해 휴식을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에게 내 여행을 ‘전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어떤 이는 여행을 통해 소중한 것을 얻어 온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나의 경우에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SNS에 여행을 자랑하듯 올리고, 부러움과 약간의 질투를 얻고 싶은 게 숨겨진 내 욕망이었다. 안정적인 삶의 장벽을 넘어 이방의 땅으로 올 때에는 그런 마음이 허용되었다. 솔직히 ‘부럽다’라는 반응만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전시하는 삶. 우리는 그걸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실은 주변의 관심을 많이 받기를 원한다. 지나친 관찰은 불쾌해하지만, 자신의 명예, 권력, 위치는 마음껏 드러내고 싶어 한다. 평소에 눈치를 많이 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노라면 의아하면서도 이해가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아이러니가 쉽게 이해된다. 약점을 감추고 싶어 하면서도 은근한 과시욕이 있는 모습이 모두에게 있다. 나 역시 그런 유혹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약한 인간인 것만 같았다. 이런 고백이 상당히 쑥스럽기도 하나, 모든 여행 속에서 내가 직면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자기기만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나는 진실하게 살고 싶다.








keyword
이전 06화기어코 잘못 도착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