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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 로드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20분

by 새내기권선생

새로운 경험에 대한 나의 욕구는 여전했다. 좋았던 곳을 다시 찾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보다 나는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탐험할 때 더 흥분되었다. 이번엔 가 볼 곳은 카오산 로드였다. '배낭여행자들의 성지', '방콕의 불금은 여기서',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는 핫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여행 블로그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슬로건들이었다.

도착하고 나서 메인 거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쿵쿵대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우리는 음악이 이끄는 대로 글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메인 거리에 들어서자, 각 술집에서 EDM이 터져 나왔다. 힙합, 팝송, 재즈가 아무 질서 없이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는 대마 특유의 향이 코를 찔렀고, 맥주 그리고 땀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다양한 인종의 여행자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의 배낭여행자들부터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는 인플루언서들까지. 술집과 클럽, 마사지샵, 타투 가게, 액세서리 노점상이 미로처럼 이어졌다. 계속 걷다 보니 카오산 로드의 명물이라는 맥도널드 피에로가 보였다. 관광객들과 셀카를 찍느라 정신없는 피에로를 보니 왠지 모르게 짠하게 느껴졌다.

이 독특한 분위기를 즐겨보려 애썼다. 나도 남들처럼 이 분위기에 빠져보고 싶었기에.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런데, 길을 걸으면서 내 몸은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지고, 손으로 코를 막고 있었다. 그럴 때쯤이었을까. 노점에 전시되어 있는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등을 자꾸만 밀었다. "익스큐즈 미!" 하며 지나가는 관광객들이었고, 셀카봉을 휘두르면 연속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러시아워 속에 있는 지하철처럼 앞만 보고 걷는 일뿐이었다.

"맥주 원 겟 원 프리!" "마사지 30분 200밧!" "타투 스몰 사이즈 500밧!" 호객꾼들이 한국어 메뉴판을 들이밀며 팔을 잡아당겼다. 어떤 이는 내 손목을 직접 잡고 술집으로 들어오게 까지 했다. 어찌어찌 거절하자 바로 다음 호객꾼이 등장했다. 그 순간 모르는 이의 맥주가 내 신발에 튀었는데 사과는커녕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길거리에는 쓰레기로 가득했다.

숨이 막혔다. 아니, 숨 쉬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의 체온과 열기로 거리는 찜통 같았고, 각종 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목구멍과 눈을 따갑게 했다. 내가 생각했던 여행자들의 낭만적인 거리가 아니었다.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인파를 헤치고 거리를 빠져나오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카오산 로드에 도착한 지 정확히 20분. 우리는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도망쳤다. 택시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정신을 차렸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네온사인을 보며 생각했다. '와 드디어 살 거 같네.'

카오산로드는 누군가에겐 자유와 일탈의 공간이었지만 나에겐 그저 답답한 곳이었다. 이번을 계기로 나는 시끄러운 음악보다 재즈가 흐르는 루프탑 바가 좋고, 인파에 치이는 것보다 한적한 사원을 거니는 게 좋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술에 만취한 채 비틀거리는 것보다 맥주 한 잔 마시며 조용히 야경을 감상하는 게 좋다.


이번 카오산로드 덕분에 정말 확실히 알게 됐다. 내가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어떤 공간에서 행복한지.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20분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 다음엔 내가 진짜 좋아하는 방콕의 숨은 공간들을 찾아다녀야겠다. 기왕이면 조용하고, 여유로운 곳들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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