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 심사대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점점 북적이기 시작한다. 까까머리 청년이, 부모님이나 지인들과 이야기한다. 반대로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부둥켜안고 우는 사람 또한 있다. 그런데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가야 할 때가 왔나 보다. 시큰둥한 말투로 인사하고, 발걸음을 내민다.
"다녀올게요!"
그리고 무심해 보이는 우리 가족들.
"그래"
"부모님을 향해 경례"
"충성!
티비에서 봤던 대로 어설프게 거수경례를 따라 해 본다. 직접 앞에 서니 여러 부모님들과 지인들이 더 잘 보인다. 뿌듯한 미소를 보내는 사람, 눈물을 훔치는 사람. 이름을 크게 부르기도 사람, 서럽게 우는 사람. 우리 부모님은 어디에 있을까 찾아본다. 사람이 많아 잘 보이지 않는다. 혹시 벌써 가버린 건 아니겠지. 제대로 인사도 못한 거 같은데. 하지만 한참을 찾아도 안 보인다.
"전체 뒤로 돌아!" "앞으로 가!"
이제 진짜 가야 할 시간인가 보다. 그런데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들". "아들!".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혹시나 했는데, 맞았다. 엄마가 빨개진 코 끝과 글썽이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잘 다녀와. 몸조심하고!" 뭔가 복받치는 마음에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웃으며 대답해본다. "응, 다녀올게요. 조심히 들어가요."
티비에서 본 내무실의 모습이 점점 보인다.
창문과 길게 늘어진 마주 보는 마루 두 개.
깔끔히 쌓여있는 보급품들.
각이 잡혀있는 군복과 모포.
차곡차곡 잘 정리되어있는 훈련용 총들.
정해진 속도로 째깍이는 시계는 화룡점정이었다.
무질서하게 흩어진 우리는 각자 자리를 찾아 헤맸다.
복잡한 마음을 가진 표정들이 보인다.
그리고 걱정 가득한 눈빛까지.
우린 아무 말 없었고, 긴장을 놓지 않았다.
마치 방금 무인도에 떨어진 게임 캐릭터들처럼.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이런 이른 새벽에. 그런데 이 낯선 곳은 어디일까. 아 참 난 어제 훈련소에 왔구나. 나팔소리가 무슨 일이 아닌 일상이 되어야 하구나. 며칠을 이렇게 생활해야 할까. 22개월. 약 2년의 세월을 이렇게 보내야 하는 거구나. 도대체 뭘까 이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숨통을 조여 오는 듯함은.
아무렇지 않았던 내 평소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아주 평범했던 순간들. 예컨대 주말에 침대서 늦잠을 잤던 순간. 그리고 엄마가 밥을 먹으라며 깨워줬던 순간. 아롱이가 방문을 긁고 들어와, 내 볼을 핥아준 순간까지. 이 일상들이 그렇게 소중했음을 사무치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