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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내기권선생 Jan 15. 2021

초등학생한테 힐링받고 가세요

교실 속 작은 힐링

 아이들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웃을 때가 다. 


 언제 한 번 "선생님이 어릴 때 유명했던 아이돌 가수를 맞춰보세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아주 큰 목소리로 답을 했다. 가수 나미라고 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을 들어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져 버렸다.  차라리 H.O.T, 핑클이라면 모를까, 가수 나미라니..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참고로 글쓴이는 20대이다ㅜㅜ). 웃음을 가라앉히고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자기가 알고 있는 오래된 가수가 나미여서 그랬단다. 순간 '대체 나를 몇 살로 보는 거지?' 하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이니까 그런 거겠지.' 하고 넘겼다. 


 특히나 우리 반 수학 익힘책은 웃음 지뢰밭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 심지어 몇몇 아이들은 채점할 때, 한 장을 넘기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다음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수학 문제 답으로 참 유쾌한 내용을 적었다.

당당하게 쓴 아이들의 수학 답변

 보통 잘 모르면 서술형 문제는 비워두지 않는가? 그런데 초등학생들은(적어도 우리 반은) 이렇게 당당히 쓴다. 그래서 가끔 고민 아닌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진짜 정답이라고 생각해서 적은 건가?' , '웃기려고 한 건가?'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국 '더 열심히 수업 준비하자!'로 마무리 지어진다. 


 윗 아이들의 답변처럼 큰 사탕이 입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고, 자로 재어보면 기분이 좋을 수도 있다. 잘 생각해보면 틀린 답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자기가 생각하는 걸 솔직하게 표현하는 아이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숙제를 읽으면서도 재미있는 일은 참 많다. 하루는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에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간략하게 요약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감정 캐릭터를 그려보라고 했다. 어떤 아이가 3분 만에 뚝딱 마무리하고 손을 들었다. 그림만 보고는 바로 '더 자세히 그려야 될 것 같네'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밑의 이름을 보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인사이드 아웃 캐릭터 만들기 과제, 캐릭터 이름 : 귀찮아 / 특징 : 귀찮음을 많이 탐.

 이름이 이 작품을 완성시켰다. 누가 봐도 귀찮아 보이는 저 표정과 움직이고 싶지 않아 하는 느낌..  아이들에게 보여주자 아이들 반응 또한 나랑 같았다. 이름이 캐릭터를 살렸다고 했다. 


 얼마 전, 교실에서 성탄절을 기념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든 적이 있다. 국어 시간에 배운 편지의 형식을 활용하여 친구에게 하고 고마웠던 말을 써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런 말을 썼다.

해석을 해보자면, 자기가 이 친구보다 발로란트라는 게임을 잘하니 깝죽거리지 말란다. 마무리 인사로 서로의 솔로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한다.


 읽어보면 개연성도 없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국어 시간에 배운 편지 형식을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모르게 웃기다. 고마운 친구에게 써보라고 했더니 자기가 게임을 더 잘한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고, 고작 11살이 '솔로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것도 웃기다.


 그렇다. 참 아이들은 순수한 것 같다. 자기네들끼리 나름의 거친 말을 해도 그것도 귀엽다. (그렇다고 비속어는 용납하지는 않는다)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인데, 이상하게 아이들과 있으면 즐겁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는 없는 반짝거림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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