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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M Mar 06. 2021

푸름이 학생

#교장선생님의 수업 참여 #기초와 적응 프로그램 #21번 학생

선생님,
오늘 1학년 3반, 3교시 수업에 들어가도 될까요?

메시지가 도착했다.

교장선생님이었다. 아마도 교직원 회의에서 전체 선생님들께 자유학년제 기초와 적응 프로그램을 참여하도록 안내한 탓일 것이다. 그리고, 동료 선생님(기초와 적응 프로그램을 담당)의 독려와 채근(?) 덕에 이미 다른 수업을 참여한 터라 수업참여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장이 이미 학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수업에 참여해보는 것은 어떤 문서와 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당연하죠.
그럼 오늘은 '푸름이' 학생으로 부르겠습니다.

동료 선생님의 수업에서 교장선생님을 '푸름이' 학생으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푸름이는 교장선생님의 '부캐'인 셈이다. 실제, 푸름이동료선생님의 수업에 학생들 못지 않게 참여한 것을 직접 봤기 때문에, 나 역시 기대가 되었다.



오늘은 푸름이가 새로 전학왔다.
너희들 친구니까 친하게 지내보자.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교장선생님을 소개했다.

사실, 교장선생님으로 만나기 전부터 교장선생님을 '~님'으로 호칭하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푸름이 학생으로 소개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어색했는지, 푸름이에게 하는 첫마디는 존댓말이었. 그러나 나와 학생들의 어색함도 잠시였다.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이 우리들의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재밌었던 모양이다. 물론, 푸름이도 '나는 니들 친구니까, 편하게 얘기해'라며 야자타임을 허용(?)했다.  


오늘은 학교 공간 활용 수업을 했다. 

우리학교의 신입생 기초와 적응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데, 오늘은 공간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학교 공간의 역사를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이 집 다음으로 오랜시간 생활하는 학교 공간을 의미있게 받아드리는데 도움을 주는 시간인 셈이다. 학교 공간이 자신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인식은 새로운 공간에 살게 된 이들에게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글에서 공유예정)


이러한 내용은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누구에게나 필요할 것이다.

공간을 애정하는 만큼 현재 생활에 대한 만족감, 행복도도 높아질 것이다. 새로 전학(부임) 온 푸름이 학생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그저 한 두번의 수업을 참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왔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친구(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왔으리라 생각한다.


수업을 진행한 나는 전반적으로 다른 반과 다름 없는 수업을 했지만,

푸름이 덕에 조금 더 힘을 실어서 얘기할 수 있었다. 이것은 푸름이가 학교장이라서기 보다는 개별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의식/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제공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일종의 행위 중 성찰인 셈이기도 하다. 그리고, 학생으로 참여했던 푸름이가 던지는 진지하면서도 깊이있는 이야기들 덕에 우리 아이들도 색다른 생각과 배움이 일어났으리라 생각한다.


우리학교에는 소위 '21번 학생' 문화가 있다.

교사가 한 학기 동안 동료 교사의 수업에 학생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나 역시, 최근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21번 학생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는 선생님들의 자발적인 선택과 참여 속에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지속된 문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21번 학생 문화는 이제 교장, 교감선생님의 참여로도 이어지고 있다.

 

원희학생(동료교사의 부캐)의 공간 탐방 활동



교감선생님,
다음주 월요일 2-3교시 수업에 꼭 들어오셔야 해요.

이러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용하고 있는 동료 선생님이 식당에서 만난 교감선생님에게 전한 말이다. 아마도 다음주 월요일은 교감선생님이 21번 학생이 될 것이다. 이름은 '덕이'로 하겠다고 한다. 식당에서는 푸름이와 덕이의 이야기로 훈훈할 것이다. 푸름이와 덕이의 21번 학생 경험이 친구(학생)들을 이해하고, 학교를 좀 더 이해하고, 수업을 이해하고, 교사들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자신의 본캐로 돌아간 푸름이와 덕이가 교사와 학생들이 더욱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문화를 지원하고, 밖으로는 교육이 맞닿아 있는 도전적인 경계들에 직면하고, 법/제도적 개선에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 글을 통해 21번 학생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특별히, 바쁜 한주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21번 학생이자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던 (부캐) 응즈, 성순, 원희 에게!)


[관련 글]

https://brunch.co.kr/@freshlife10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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