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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은 Fob? 이방인?

닉네임 Fresh off the BAE의 탄생기까지...

by Fresh off the Bae
나: 저기요, 아이스 워러 좀 주세요!
식당 직원: 물은 셀프입니다.


미국에서 사는 기간이 늘어갈수록, 미국에서의 내 정체성은 Fob으로 굳어지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아니, 한국에서조차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나갈 때만 해도 '와, 한국이 정말 많이 변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코비드로 한동안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다가 몇 년 만에 한국에 갔을 때는 약간의 문화 충격까지 느껴졌다.


어느 식당이나 카페를 가더라도 보편화되어버린 셀프 주문 및 결제 시스템, 무인 상점, 많은 것이 빠르고 효율적이며 자동화가 된 사회를 보면서, 편리하면서도 왜 그렇게 어색했던지...


심지어 미국에서는 서툴기 그지없는 영어가 말하는 중간중간 튀어나오기도 하고, 또 미국에서는 아주 별로인 내 미국 영어 발음이 한국에서는 유독 혀를 굴리는 것처럼 들려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다.


우리는 왜 숫자 3을 "쓰리"로 배운 거야?! 미국에선 "뜨리"라고 해야 그나마 내 썩을 놈의 발음을 알아듣는데... 차가운 물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아이스 워러"라고 해가지고...
tony-hand-C9Ni6Gh_gWk-unsplash.jpg Photo by Tony Hand on Unsplash


미국에선 한 없이 어색하고 부족한 내 발음이 한국에서는 "투머치"인 거다. 그만큼 미국에 익숙해졌다는 거니 웃어야 하나, 아님 이도저도 아닌 내 처지에 울어야 하나?




친구로부터 Fob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듣기까지, 난 그게 뭔지 몰랐다. 내가 30에 미국에 왔으니, 그 사이 성숙한 직장인들은 더 이상 그런 말을 함부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곳에 오래 산 한인들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바로 티가 난다고 말한다. 뭐... 나도 이제는 구분이 가능하다. 물론 나는 아직까지 한국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했고, 내 눈엔 한국 옷이 가장 예쁘다. 심지어 다양한 인종의 직원들이 일하는 직장에 한국 옷을 입고 가면 다들 너무 예쁘다고 칭찬한다.


A: 어머, 너 이 옷 너무 예쁘다. 너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예쁜 옷들만 입더라.
나: 아, 한국산이야... 하하하.
A: 역쉬!! 그럴 줄 알았어!!!


사춘기 시절 어린 학생들에게는 놀림의 대상이 되었을지 모르나, 좀 더 성숙한 시선으로 편견 없이 바라보면 이렇게 다르다.


stephen-kraakmo-uAzUg6_tMCo-unsplash.jpg


그리고 어느순간 Fob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굳이 자책을 하고, 작아지는 것보다는 이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차별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문화적 지식과 언어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나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브런치 닉네임 말이야... 'Fresh off the 배(BAE)'로 하는 게 어때? 너는 부정할 수 없는 Fob이잖아? 그리고, 네 '성'인 BAE를 Boat 대신 넣는 거지. 배가 영어로 Boat를 의미하기도 하잖아!


나의 글쓰기 작업을 물심양면 서포트해주고 있는 남편은 어느 날 나를 도와줄 방법을 찾았다며, 이렇게 기가 막힌 닉네임을 선사했다. 남편은 내 글쓰기의 보물창고이자 든든한 조력자이다. 쿡 찌르면 이야기가 술술 나오고, 한국과 미국의 문화차이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1.5세이므로, 너무나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고마워 남편! 근데 어쩌냐? 한 때 Fob을 그렇게 놀렸으면서, 그 누구보다 Fob인 나랑 결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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