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그렇게 또 시작된다
콜롬비아에서 쿠바로 가려면 우선 칼리에서 보고타로 이동해야 했다. 보고타까지는 보통 야간 버스를 이동하지만 이번엔 주간에 이동하기로! 미리 사 둔 버스표로 아침 8시 버스 타고 보고타로 출발! 생각 외로 콜롬비아 칼리에서 보고타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새해 주말까지 콜롬비아 연휴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인지라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보고타 가는 방향으로 민족 대이동 수준으로 차량이 엄청 많았다. 칼리에서 보고타 사이의 길은 한국의 대관령 같은 고갯길. 왕복 2차선, 끝이 보이지 않는 차량 행렬 때문에 오래 걸려도 9-10시간이면 가는 거리가 16시간이나 걸렸다.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한 박사님과의 약속도 못 지키고 자정에 도착한 나. 박사님은 콜롬비아에 오면서 보고타에서 알게 된 분으로 국가의 녹을 드시며 콜롬비아 정부 기관의 자문 역할을 하고 계시다. 아버지랑 연배도 비슷하시고 이래저래 나에겐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칼리에서 살사 배우다 춤바람 났다고 말씀드렸더니 인생 재밌게 산다고 하셨던 박사님. 도착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결국 다음 날 민박집 아침 먹을 때 뵐 수 있었다.
쿠바로 가는 항공편이 오후 시간이라 오전에 시간 여유가 조금 있었다. 공항 가기 전 커피 한 잔 하러 동네 마실 나갔다가 정말 연 곳이 없어 구멍가게인지 문구점인지 모를 곳의 달랑 하나 있는 탁자에 앉았다. 주인아저씨가 보온병에 따라주는 커피 한 잔에 박사님이 따로 챙겨 오신 페레로 로쉐 초콜릿을 먹으며 이야기보따리 술술.
여기서 쿠바 가서 애들 줄 볼펜을 사려고 했는데 선뜻 대신 사주신 박사님. 그렇게 난 마음 따뜻하게 3년 만의 쿠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근두근, 쿠바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언니와의 만남과도 기대되고! 언니와는 2012년 라오스 배낭여행 중에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동행을 했었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 서울에서는 자주 봤지만 해외에서 만나는 건 6년 만이다. 2018년 봄부터 해외를 떠돌아다녔던 나. 이렇게 쿠바에서 언니 만날 생각을 하니 어찌나 반갑던지.
저녁에 도착한 쿠바 아바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보고타에서부터 같이 이동한 동행과 함께 돈을 뽑으러 ATM을 찾았다. 역시나 1층은 줄을 서야 했다. 그러나 난 알지! 2층에 있는 ATM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걸! 역시나 올라가니 사람이 없어 바로 돈을 뽑아 택시를 잡았다. 20쿡에 가자고 하니 처음엔 안된다더니 나중에는 오케이! 출발하고 나서 둘이 다른 곳에서 내린다고 기사 아저씨한테 말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까사 요반나에 동행했던 동생이 먼저 내렸다.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타고 가려는데 택시 아저씨가 25쿡이라고 한다.
왓? 20쿡이라고 했잖아?
급 빡이 쳐서 앵그리 게이지 올라가고 고작 걸어서 7분 거리에 차로 1-2분이면 가는 거리를 25쿡 달랜다. 그럼 진작에 아까 내리는 곳 다르다고 했을 때 25쿡이다 말해줬어야지! 그럼 중간쯤에서 내려도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인당 25쿡이다 하는 듯이 말해서 더 어이상실. 그렇게 동생은 어쩔 줄 몰라하고 난 까사 요반나 앞에서 택시 기사랑 싸우고 있었다. 나중엔 경찰을 부르겠다 하길래
그래 불러라 불러!!
보통 난 하하호호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편이지만 돈 가지고 장난하거나 여행자 등쳐먹는 사람, 앞과 뒤가 다르고 가식적인 사람, 그리고 버르장머리 및 예의 없는 사람에겐 단호하게 대처하는 편이다. 동행했던 동생과는 쿠바의 다른 도시를 여행하고 돌아오면 보자고 재빠르게 인사를 했다. 택시 기사에겐 돈 한 푼도 더 주기 싫어서 20쿡을 냅다 던지듯 줘버리고 내 배낭을 챙겨 가버렸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지만 남이 보기엔 전혀 서두르지 않는 것처럼, 혹시나 진짜 경찰을 부를까봐(난 의외로 정말 소심) 차가 못 오는 길 쪽으로 부리나케 가다 보니 어느덧 까사 도착.
엉니~~~
(언니가 마치 엉니 느낌이었다)
그렇게 언니와 쿠바 아바나의 어느 까사에서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방에서 나온 언니와 부둥켜안고 점핑하면서 너무 보고 싶었다고 절~~~ 대 하지 않고 어제 만난 사람처럼 쿨하게 인사를 나눴다. 원래 우린 그랬으니까. 난 성향상 누구한테 번지르르한 말을 잘 못한다. 수년 만에 만났어도 “왔어?”, “잘 지냈냐?” 정도이지 “어머!! 이게 얼마만이야~~ 너무 보고 싶었어~~~” 이런 말은 잘 안 한다. 그래서 이런 설명을 덧붙일 때도 있다.
내가 어머어머~~~
이런 표현을 안 한다고 해서
안 반갑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반가워 매우 ㅋ
언니나 나나 털털한 성격이라 우린 그렇게 일상적인 만남처럼 쿠바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사실 언니가 쿠바 오기 전, 남미 여행하는 중에 자주 연락해서 오랜만에 만난 느낌도 안 들긴 했다.
신유!
이 까사 정말 좋은 것 같아
수압도 너무 좋고
지금까지 묵은 까사 중 최고야!
언니 내가 누구야~~
나만 믿어 ㅋㅋ
언니가 까사에 만족해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내가 오기 전 쿠바를 일주일간 여행하며 고생을 좀 한 모양. 이미 남미에서 고산증으로 죽을 고비도 넘겼던 언니라 이래저래 걱정했는데!
사실, 수압이 웬 말인가??!! 쿠바 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게다. 쿠바 숙소(까사) 구할 때 수압은 정말 중요하다. 심하면 정말 시냇물은 졸졸 조 올졸~~~ 이 아니라 약수터에서 나오는 약수의 쫄쫄 쫄 수준의 물로 씻어야 하는 까사도 많기 때문이다. 층이 높을수록 더 그렇다. 수압에 문제없는 까사도 많지만 문제 있는 까사가 더 많다.
쿠바에 오면서 짐을 줄인다고 노트북이며 다 두고 왔는데도 배낭 짊어지고 7분 정도 걸어왔더니 좀 힘이 들었다. 언니가 페루에서 가져온 선물 알파카 인형과 인사를 하고 좀 쉬다가 밖으로 나왔다.
벌써 밤 9시, 언니는 까사 요반나에서 지내다가 내가 오는 날에 맞춰서 오늘 숙소를 옮겼다. 요반나에서 알고 지낸 다른 더 고령의 언니와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고 하여 같이 길을 나섰다. 이 언니도 나처럼 타이마사지 배우고 싶어 하는데 내가 몇 달 전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타이마사지를 배우고 온 지라 잘 맞을 거 같다 하며 소개해줬다. 셋이 중국집 티엔탄에 가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맛은 그대로군! 2015년 쿠바 여행 때 자주 갔던 중국집 티엔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밤이라 그런가 아바나는 그렇게 많이 바뀐 것 같지 않았다. 까사(숙소)가 말레꼰과 가까워 근처 밤 산책을 하다 들어갔다. 내일은 1박 2일 동안 비냘레스로 떠난다. 나도 안 가봤고 언니도 안 가봐서 여행 느낌 살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