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기에 지친 당신, 저녁 먹고 힘내요
쿠바 비냘레스에 가면 말을 많이 탄다. 그래서 이왕 온 거 내 인생 처음 말타기에 도전해봤다. 픽업 택시를 타고 말 주인집에 도착해서 말을 타고 출발. 미리 말 탈 준비를 한다고 긴바지를 입고 왔던 터라 뭐 그냥 타면 되지 어렵나 싶었다. 근데 타면 탈 수록 왜 이렇게 불편하지? 다리가 꼬이는 듯한 불편함을 감수하며 15분 정도 말을 타고 도착한 곳은 시가 농장이었다.
미리 말 주인에게 밥 먹을 곳 어디 없냐고 먼저 물어봤었는데 시가 농장에서 먹으면 된단다. 밥부터 먹고 시가 만드는 것을 보고 출발하자고 하려는데 말 주인아저씨가 밥을 먹고 있네? 커피나 꿀 만드는 것을 보라는데 굳이 봐야 하나 싶어서 패스. 그냥 기다렸다. 그리고 출발. 출발 전 말 타는 게 너무 불편하다 했더니 언니가 바꿔 타 보자고 해서 말을 교체해서 가는데 말 주인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한다.
이제 곧 1시간 다 되어가는데
1시간 더 탈 거야?
이게 무슨 소리? 말 타는 시간이 말 주인집에서 출발한 시간부터였고 대기시간이든 뭐든 다 포함한 시간이라는 거다. 우리가 순수하게 말을 탄 시간은 20분도 채 안 되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 언니는 대노하며 돈 한 푼도 더 안 줄 거라고 돌아가자고 한다. 이 기분에 굳이 한 시간 더 타고 전망대까지 다녀오는 것도 싫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말머리를 돌려 되돌아가는데 바로 비가 쏟아진다. 다행히 나무가 비를 조금은 막아줘서 갈만했다. 진흙길을 쭉 가다 보니 구름 사이로 빛 내림이 살포시 내려왔다. 뭔가 토닥토닥해주는 기분.
말 타고 오는 길에 카메라 셔터 버튼을 잃어버렸다. 비가 그칠 즈음 알았는데 그 진흙 속에서 찾을 리 만무하고, 너무 아까웠지만 그냥 그 버튼을 허무하게 보내야 했다. 호주 시드니에서도 한 번 잃어버렸는데 왔던 길을 되돌아보며 결국 찾았던 셔터 버튼,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사진 찍기 편한 그 아이, 미련은 너무 남지만 고이 접어뒀다. 그렇게 우린 말에서 내렸고 다시 픽업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왔다. 뭔가 하다 만 것 같은 말타기 체험. 기분만 상하고 온몸에서 말 냄새만 나는 것 같았다. 개운하게 씻고 비냘레스 동네 마실을 나섰다. 어둑어둑해지는 거리의 일몰도 보고 이것저것 구경도 하다 오니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
까사 주인아저씨가 저녁 메뉴로 랑고스타(랍스터) 어떠냐 해서 흔쾌히 좋다고 했는데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인당 15쿡(약 18,000원) 숙박비 조식 그리고 석식까지 포함이니 나와봤자 얼마나 나오겠나 싶었다.
뭐 기껏해야
랑고스타 볶음밥 나오겠지
그리고 곧 나온 저녁식사에 우린 사진 찍느라 바빴다. 이렇게 잘 나오기 있기 없기?
개인당 랑고스타 한 마리씩에 쿠바식 식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토마토 오이 샐러드와 과일,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을 법한 쌀과 우리 입맛에 맞는 소스까지 너무 맛있게 잘 먹었던 저녁식사. 기분이 좋아 맥주 한 잔까지 했더니 나도 모르게 뿌듯했다. 여행 뭐 별거 있나? 기분 나쁜 일 있다가도 기분 좋은 일 있고 그런 거지. 인생도 마찬가지겠지만.
내일 점심때쯤 아바나로 가는 콜렉티보 택시를 예약했다. 아바나에서 비냘레스는 인당 25쿡이었지만 비냘레스에서 아바나는 인당 20쿡이었다. 예약 가능한 시간이 1시라 12시에는 까사에 있어야 한단다. 오늘 쿠바 시가 만들기 견학? 외에는 한 일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버려서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녀야 할 것 같다. 시티투어 버스를 타면 5쿡에 내렸다 탔다 하며 비냘레스 주요 관광지를 다 갈 수 있다는데 한 번 타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