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때로 꽈배기처럼 꼬인다
조식을 일찍 먹고 비냘레스 시티투어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아바나로 가는 택시가 2시에 온다 하여 늦어도 1시까지는 까사로 돌아오라는 까사 주인. 가끔 택시가 일찍 올 때도 있기 때문에 미리 와서 기다리라는 것 같았다.
투어 버스는 9시가 첫 차.
첫 차가 왜 이렇게 늦지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투어 버스를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은 호텔 전망대. 여기서 10분 정도 정차했다 출발한단다. 전망대에서 비냘레스를 조망할 정도의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드넓은 들판에 융기된 석회암들. 신선한 공기를 한 움큼들이마시고 버스 탑승했다. 버스에서는 살사 음악이 흘러나와 어깨까지 들썩들썩. 그렇게 또 달려 비냘레스 하면 자주 나오는 벽화에 도착했다. 여기선 내릴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다음 차는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후에 온다고 해서 짧은 시간 동안 엄청 갈등!!!
신유! 어떻게?? 내려 말아??
이것은 마치 옛날 옛날 옛적에 텔레비전에서 이휘재가 그래 결심했어 하기 전의 급박한 상황? 내 결정은
내려!!!!
그러나 이것이 실수라는 것을 이 때는 몰랐었다. 여기서 내린 사람은 우리 둘과 양인 할머니 한 분. 역시 살다 보면 많은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잘 모를 땐 큰 흐름을 따라가는 게 좋다. 남들 안 내릴 때는 안 내리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우린 버스에서 내려 입장료 3쿡을 내고 들어갔다. 벽화는 우리가 자주 보던 그런 형이상학적인 그런 문양이었는데 오래된 것인 줄 알았건만 아니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한 화가에게 그리라고 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무려 4년에 걸쳐서 완성된 벽화로 50여 년 정도 되었다 한다. 근데 정말 벽화 외에 아무것도 없다. 들판에 보이는 엄마 염소와 아기 염소뿐.
괜히 내렸다는 생각은 이미 버스가 떠나고 10여 분만에 들었다. 그러나 어찌하리. 이미 버스는 떠났고 우린 남겨졌다. 개인적으로 차를 끌고 온 사람들은 차를 타고 와서 사진 찍고 휘릭 사라졌다. 한 시간 안에 버스가 오길 바랬지만 그건 우리의 바람일 뿐. 그 사이 질리도록 사진을 찍었으나 30분 경과. 염소 사진 찍고 남들 타고 온 올드카랑 사진 찍고 하다 보니 시간이 꾸역꾸역 지나갔다. 언니도 내리지 말걸 하는 후회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 결국 버스는 한 시간 반 후에 왔고 우린 버스를 타고 다시 이동했다.
다음 정류장은 인디오 동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내렸다. 우린 내릴 수가 없었다. 이미 12시였기 때문에 여기 들어갔다 다음 버스를 타면 까사에 1시까지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후회. 그놈의 벽화가 뭐라고 우린 내렸을까. 난 왜 그때 그런 결정을 했을까.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인디오 동굴은 언저리에도 못 가보고 지나쳤다. 까사로 가는 중에 길거리 기념품 가게만 둘러보고 바로 시간 맞춰 까사로 갔다.
아바나로 갈 준비를 마치고 택시를 기다리던 우리. 보통 오래 기다려도 30분~1시간이면 오는데 택시가 안 오네? 까사 주인의 괜찮다 기다리라는 말에 그대로 대기. 결국 2시가 되어도 택시는 오지 않았다. 2시 반이 되어도 안 오는 택시, 뭔가 이상하다. 까사 주인 부부는 걱정 말라고 택시는 온다고 했다.
그러나 2시 40분이 되어도 안 오네? 배는 고픈데 점심도 안 먹었지 이럴 줄 알았으면 인디오 동굴이라도 보고 올껄하는 또 다른 후회가 밀려온다. 참다못한 주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가더니 3시쯤 나타났다.
택시에 문제가 있어서
다른 택시가 4시에 올 거야.
뭐라고?!!
성질은 났지만 까사 주인 탓도 아니고 해서 화나는 걸 참고 밥이나 먹고 오겠다고 했다. 다행히 까사와 멀지 않은 곳에 (도보로 5분) 저렴한 식당이 있었고 여기서 밥 먹고 4시까지 들어가면 되겠다 싶어 주문했다. 밥을 중간쯤 먹었나? 노란 새 택시를 타고 까사 주인이 지나갔다.
여기서 밥 먹고 있었구나!
밥 먹고 와!
그리고 평화롭게 밥을 마저 먹고 있는데 이름 모를 쿠바노(스페인어로 쿠바 사람 : 남자는 쿠바노, 여자는 쿠바나) 두 명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야 서둘러야 해!
차가 기다리고 있어!
응?? 4시라며!!!
차가 기다리던 말던!! 우리 둘 다 저렇게 말하고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 밥을 꾸역꾸역 급하게 입에 밀어 넣고 바로 까사로 갔다. 택시에는 양인 커플이 부둥켜안은 상태로 타고 있었는데 그들이 기다려서 그랬나 보다. 아까 까사 주인이 택시를 급조한 거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짜증만 가득 난 상태라 까사 주인 부부에게 인사도 안 하고 짐만 챙겨서 나와버렸다.
여행은 그렇다. 매 시간이 즐거워도 마지막에 기분을 망치면 다 망쳐지는 느낌. 그렇게 비냘레스에서의 1박 2일 여행이 끝났다. 인사를 안 하고 나온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아까는 너무 화가 나서 인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바나로 출발! 중간에 제한속도에 걸려 택시기사가 경찰에게 불려 간 것 빼면 별문제 없이 아바나에 도착했다.
1박만 하고 왔을 뿐인데 아바나 까사는 이렇게나 예쁘게 바뀌어 있었다. 침대 시트가 너무나도 맘에 들어 바로 눕고 싶은 충동까지~~!
우린 까사에 오자마자 짐 놓고 라면부터 끓이기 시작했다. 한국인에겐 라면이지! 라면을 궁금해하길래 까사 주인 요한까에게 한 입 권했더니 입에 넣고는 헙!!! 소리 내며 도망친다. 아무래도 너무 매워서 뱉었겠지?? 맵다고 말은 했지만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