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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되새김 여행

여행은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한 거야

by 신유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 내일은 언니가 떠나는 날이라 나에게도 오늘이 오랜만에 여행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다른 도시로 가지 않고 아바나에서 쿠바 살사만 배울 예정이기에. 언니에게 안 가 본 곳을 물으니 모로 요새라고 했다.


그럼 모로 요새 가야겠네!!

난 모로 요새를 2015년에 한 번 다녀왔다. 동행이 굳이 가자면 가겠지만 나 스스로 가진 않을 곳. 언니랑 간다면야 흔쾌히 모로 요새에 다시 갈 마음이 있었다. 같은 장소라도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그곳에 대한 기억도 달라지니까.


까사 요반나 근처에 있는 복싱장의 쿠바 국기
오비스포 근처 어느 상점에서 살 만한 물건 없나 보던 언니


떠나기 전 날이라 기념품들을 사러 산호세 시장부터 갔다. 역시나 쓸데없는 건 사지 않는 슬기로운 쇼핑 패턴. 정말 언니에게 필요한 캠핑 캐치볼용 가죽 야구 글러브와 야구공과 친구 선물 몇 가지만 구매하는 언니.


쿠바 아바나 산호세시장


루트상 산호세 시장-배 타고 예수상-도보로 모로 요새 갔다가 버스 타고 오면 아주 만족스러운 반나절 코스가 된다. 3년 전에는 꼬히마르에 다녀오면서 거꾸로 모로 요새를 들른 후 예수상-배 타고 아바나로 돌아왔었다.


예수상이 있는 카사블랑카로 가는 배 삯을 내려고 하는데 얼마냐고 물으니 검지 손가락 하나를 올리며 1을 표시하는 아저씨. 엉겁결에 1쿡을 냈다. 3년 전에도 했던 실수를 반복하는 나.


누군가 쿠바 버스나 배 등 공공요금에 손가락 하나만 들며 1-2라 한다면 그것은 1-2cup쿱이라는 이야기다. 두 가지의 화폐를 쓰니 간혹 외국인만 어리둥절 수 곱절 넘는 금액을 내고 사기당한 기분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24인분의 배 삯을 내고 도착한 예수상은 날이 너무 좋아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래 이 눈부신 날만 기억하자.


예수상에서 본 아바나 시가지 모습
중남미 국가 어느 나라를 가도 있는 예수상


까바냐를 지나 모로 요새까지는 수다 떨며 가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가는 길에 올드카 투어를 하는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나름 배경으로 두고 사진 찍기 좋다. 물론 순간 포착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말이다.


동영상 찍는 중에 등장한 빅재미 안겨준 관광객


모로 요새 근처의 들판을 보니 자유를 온몸으로 느끼는 콘셉트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언니! 나 찍어줘!!


나는 자연인이다 느낌으로다가 양팔 벌리고 이 공기 이 바람 이 땅 모든 것을 느끼며 미친년처럼 돌아다니는 듯하게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모로 요새 앞에서 8년 전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2012년 라오스 방비엥에서 처음 만나 루앙프라방에서 같이 룸 셰어 하며 동행했던 언니는 어느 사원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려고 했었다. 난 굳이 가고 싶지 않아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었고. 그럼 자기도 안 들어가겠다고 하여 어르고 달래다가 결국 같이 들어가기로 결정했던 그때가 생각났다. 이번에도 모로 요새에 들어간다는 언니. 상황이 달랐던 건 혼자 들어갔다 오라고 하니 알겠다고 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가려 하더라.


이제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해졌나 보다. 난 들어갈 생각 없이 왔다가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한 번을 들어간다면 언니가 들어갈 때 같이 가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밖에서 혼자 있느니 언니랑 같이 있고 싶기도 해서 입장료를 내고 같이 요새 내부로 들어갔다.


모로요새 들어가기 전


모로 요새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8 쿡의 입장료의 값어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보통의 여행자들은 요새 외부에서 풍경만 보다가 간다. 나 역시 그랬었다. 모로 요새 내부의 볼거리가 다양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언니랑 함께여서 즐거웠다.


즐거운 정도가 아니라 광대승천 정도인데


모로 요새 안에는 등대가 있는데 그 앞에서 찍은 사진 중 가장 맘에 드는 사진. 이제 3년 전의 모로 요새의 기억 위에 언니와의 기분 좋은 추억이 더해졌다. 역시 여행은 어딜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는가가 중요하다.


우리의 여행도 라오스 태국에 이어 쿠바까지, 첫 만남 라오스를 추억하며 그때 만난 지인들과 10주년 기념으로 2022년에 어게인 라오스 여행을 가자고 했었는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코로나 이후의 삶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보통의 여행자들이 여기서 사진만 찍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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