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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Aug 02. 2020

명절인데 우리 집으로 오세요

나눔 받고 나눠주고 인생이 그런 거지


25일간의 쿠바 여행을 끝내고 다시 콜롬비아로 돌아왔다. 3년 만에 찾은 쿠바는 많이 변해 있었다. 변한 쿠바만큼 나도 변해서 그리 나쁘지 않았다. 바로 여행 바람이 춤바람으로 바뀌었다는 것.


중요한 짐을 보고타 한인 민박집에 두고 왔기에 미리 민박집에서 예약해 둔 저녁 식사만 하고 짐을 가지고 바로 야간 버스를 탔다. 한국으로 휴가를 가신 박사님을 못 뵙는다는 것이 아쉬웠다. 선물로 사 온 쿠바산 시가만 민박집 사장님께 맡기고 칼리로 향했다.



야간 버스를 타고 아침에 도착한 콜롬비아 칼리, 지난번 12월 초에 머물렀던 에어비앤비 주인의 층만 다른 아파트를 미리 예약했다. 이 아파트가 좋았던 것은 거실에 있는 내 사랑 해먹!


한 달 간 지내게 될 콜롬비아 칼리 우리집


짐을 풀고 좀 쉬다가 아시아마트부터 발도장 쿵!

가는 날이 장 날이라더니! 두부가 있네??!!

떡볶이도 있네?? 근데 엄청 비싸네??


콜롬비아는 아시아마트에서 한식 재료 구하는 것이 가장 저렴


고민 끝에 두부 4모와 스시쌀, 그리고 떡볶이를 샀다. 비싸지만 있을 때 안 사면 못 먹는 것들이라 망설임 없이 담았다. 아무래도 한 달 가까이 한식을 못 먹어서 그랬으리라. (생각해보니 전날 보고타에서 먹긴 했네;;) 내 한식 재료들은 다 페르난다 집에 맡겨둔 터라 저녁에 찾으러 간다고 페르난다에게 연락을 했다.


쿠바 잘 다녀왔어?
오늘 집에서 바비큐 파티할 거야
밤 10시쯤 와~


페르난다는 내가 없는 사이에 오토바이 타고 다니다 다리를 다쳤단다. 전보다 내 스페인어가 늘었다고 말해주는 페르난다. (정말 코딱지만큼 늘었는데;;) 방에서 쿠바 다녀온 이야기를 하다가 페르난다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 파비앙도 도착하고 그렇게 늦은 밤 고기 파티가 시작되었다.


화로에 숯인지 뭔지 비슷한 연료로 불을 때는데 곁에서 불이 잘 붙도록 후후 바람까지 불어댈 정도로 나의 열정이 넘쳤다. ‘아! 정말 얼마만의 바비큐야!’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이더라. 고기가 익는 동안 무임승차하긴 싫어서 근처 가게에 가서 맥주를 몇 병 사 왔다. 파비앙이 내가 나가는 걸 보고는 쫓아와 맥주를 들어줬다. 그라~시아스!


콜롬비아식 바베큐


역시 고기는 직화구이? 근데 연장이 없네? 포크며 칼이며 없이 그냥 손으로 잡고 입으로 뜯는 시스템. 이미 연말 호스텔 파티에서 경험해본지라 암 시렁도 안 했다. 그냥 잡고 뜯으면 된다.


맛. 있. 다.


원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가 남이 타 주는 커피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가 남이 구워주는 고기가 아니던가?


바비큐 파티를 끝내고 난 내 압력솥이 들어간 이민가방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전투적으로 반찬 만들기에 돌입, 넉넉하게 사 둔 두부로 두부조림을 하고 된장찌개에도 넣어 먹고 빨간무 레디쉬로 깍두기도 담그고 양배추와 양파로 피클도 담갔다. 시금치를 데쳐서 무치고 삼겹살을 사 와서 혼 삼겹살을 구워 상추에 싸 먹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혼밥에 너무 익숙해져서 밖에 나가서 혼 삼겹살도 먹기 시작했던 지라 집에서 혼자 먹는 고기라도 정말 맛있었다.


나를 위한 밥상.

대충대충 차려먹지 않는다.

항상 정갈하고 깔끔하게 담아 먹는다.

이게 내가 나를 대접해주는 방법이다.


혼자 먹어도 항상 각맞춰 구도 잡고 먹는 나


7남매 중 장남의 딸로 태어나 부엌이라면 치가 떨리게 싫어하는 나지만 역시 부엌을 벗어날 수가 없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어쩔쏘냐. 그리고 엄마 손맛 닮아서 그런지 다 맛있는데 어떡하나.


2-3일 정도 잉여로운 생활을 하다가 살사 그룹레슨부터 시작하자 싶어서 그룹 레슨 학원인 사보르 마니세로를 찾았다. 마침 전부터 알고 지낸 스위스 친구 카린이 있어 인사를 했다.


여기 한국인 있어.
너 오면 알려주려고 했어!


어머나! 그냥 여행자도 아니고!

콜롬비아 살사 그룹레슨 학원에 한국인이라니!

보통 여행자들이 오면 내가 살사 학원을 소개해주거나 같이 클럽 가거나 그런 식이 었는데 이 학원에서 한국인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카린이를 통해 첫인사를 하게 된 한국인 커플?인 줄 알았는데 그냥 친구라고. 게다가 남자는 중국인이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구정이다.

콜롬비아 시간으로는 전날이었고 한국 시간 기준으로 구정 새벽쯤 되는 시간이었다. 살사 수업이 얼추 끝나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오늘 나름 명절인데
우리 집 와서 저녁 같이 드실래요?
두부도 있고 깍두기도 있어요
그리고... 아바나 클럽도 있어요


“아바나 클럽이요??!!”

한국인인 줄 알았던 중국 남자는 무반응(중국인이라 못 알아들어 무반응)이었고 한국 여자는 어머 그래도 되냐고 친구한테 물어보겠다고 했다. 이미 아바나 클럽이 있다는 말에 반응이 확! 그렇게 해서 우린 처음 만난 날 초면에 같이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명절상에 전이 빠지면 섭하지. 나름의 한식 한상


살사 학원이 끝난 시간이 저녁이라 학원 근처 마트에서 라임 등 살 것을 사고 바로 우리 집으로 다 같이 이동했다. 그리고 명절상에 빠질 수 없는 호박전을 부치고 이미 해 둔 음식들을 차려놓으니 저녁상은 금방 완성되었다.


키미와 수동이를 처음 만난 날. 아바나 클럽으로 대동단결! 누가 차리고 만들고 뭐 그리 중한가? 명절엔 역시 뭐든 나눠먹어야 더 즐거운 것 같다. 혼자가 아니어서 더 좋았던 2019년의 구정. 나름 제2외국어 중국어 공부했다고 중국어 조금 쓰던 나와 나랑 거의 비슷하게 중국어 알던 키미, 그리고 레알 중국인 수동이 셋이 중국어를 쪼끔씩 써서 더 재밌었다.


명절은 다함께 식사를! 콜롬비아 칼리 with 쿠바산 아바나 클럽


그 후로 우리가 이렇게 많이 친해질 줄 몰랐다.

그들이 콜롬비아 칼리를 떠난 후 나도 얼마 안 있어 칼리를 떠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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