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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왔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1).


'살아있는 사람 16 군위마라톤'을 준비하는 지금 코헬렛의 말씀이 다시 다가온다. 코로나19로 엄중한 상황에서 과연 여럿이 모여 달리기를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도무지 내 깜냥으로는 처음부터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코헬 3,10)을 마주한 모든 사람들이 방향을 찾지 못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때에 누군가는 새로운 방향과 다른 때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세상의 일이 늘 그렇듯이 전문가나 능력자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가겠지만 결국 모든 일을 이루어내는 것은 신앙인이다. 자신을 과신하지 않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 자신의 몫을 다한 후에는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이 가진 성실함과 겸손함이 역사를 이루어왔다. 


부끄럽지만 나도 신앙인이다. 내 몫을 하려고 애썼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겼다. 내가 알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때가 있고 그 때가 되면 때가 왔음을 알게 되리라 믿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왔다.


197명의 '살아있는 사람 16'이 10월 24일 토요일 오전 9시에 군위마라톤을 뛴다. 정확히 말하면 142명이 5킬로미터 걷기, 55명이 10킬로미터 달리기에 참석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두렵기도 하다. 처음으로 직접 여는 마라톤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련되고 잘 정돈된 국제 마라톤 대회라기 보다는 동네 마라톤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열정이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밖에는 좋은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코헬 3,22).


즐겁게 준비하고 있다. 16년째 달리는 일의 은혜로움, 함께 하는 197명의 살아있는 사람,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네 마라톤을 챙기는 그 마음이 추운 날씨를 꺾고도 남을 것이다. 어린이를 포함해 스물 두 명의 도우미들이 걷고 달리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코스를 이탈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시원한 물과 게토레이를 주며, 기록을 측정하고 결승선에서 환하게 웃으며 완주메달을 걸어 줄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을 맞이하고 함께 뛰는 사람은 성령의 바람을 체험할 것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형형색색의 성령의 바람이 불면, '인간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 즐기며 행복을 마련하는 것밖에는 좋은 것이 없음'(코헬 3,12)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볼 수는 없지만 멀리서도 느낄 수 있는 볼리비아와 중아공 어린이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과 선교사제들에게 힘이 되고픈 우리의 열정은 그렇게 신나게 바람을 타고 전해질 것이다.


동네 잔칫날이기에 누군가 기꺼이 내어준 돼지 한 마리를 잡아 통 바베큐와 수육을 준비할 것이다. 동네에서 딴 배추 쌈에 집된장을 얹어 먹으면 달린 후의 허기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풍요로워지겠지. 그리고 수제맥주를 대신해 이번에는 집에서 정성을 다해 최고의 품질로 만들어진 수제막걸리가 준비되어 있다. 성당 뒷마당이 잔치집이 될 것 같다.


함께 기도하며 우리의 정성을 모으는 주일미사 시간이 되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이웃을 위해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감사와 찬양 가운데 참가자 전원에게 마련된 서프라이즈와 기쁜 소식을 어서 전하고 싶다. 때가 왔다.


"모든 인간이 자기의 온갖 노고로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다"(코헬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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