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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과 담보

‘보증은 부모 자식 간에도 서지 마라.’ ‘친한 친구 간에는 말도 꺼내지 마라.’ 우리가 사는 시대에 위험한 단어, 피하고 싶은 말이 ‘보증’입니다. 그리고 그와 연관된 단어가 있는 바로 ‘담보’입니다. ‘맡아서 보증함’을 뜻하는 담보는 물적으로 혹은 인적으로 담보를 서는 것을 말합니다. 


보증과 담보의 현실적 의미를 보면 우리 시대가 얼마나 돈 중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보다 돈, 이윤, 물건이 중시되는 세상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물건을 이용해야 하는데 요즘 시대 사람들은 물건을 사랑하고 사람을 이용합니다. 사람의 마음이야 다 채무자보다는 채권자가 되고 싶고, 세입자보다는 조물주 위에 있는 건물주가 되고 싶은게 당연하겠지만 복음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본성상 채무자입니다. 빚 안지고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모에게 생명과 양육을 빚 지지 않은 사람이 없고, 가족, 친구에게 여러가지로 신세를 지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물건을 쓰고 그들 덕을 보는 우리는 모두 채무자입니다.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마음 안에 가득찬 욕망, 이기심, 죄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 하느님의 자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탈출기는 이스라엘에게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이집트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이방인이었던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하는 사람은 채무자인 자신의 처지를 잊고 한순간 채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어리석은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은 기억입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알고 기억할 때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 어땠는지 잊지 않을 때, 사람다움을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쓴 ‘장발장’ 아시죠? 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간 옥살이를 한 장발장은 출소를 했지만 죄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너무 배고프고 힘이 들어 그에게 친절을 베푼 미라엘 신부의 사제관에서 은식기를 훔쳐 달아납니다. 거지같은 행색을 한 그는 곧 경찰에 붙잡히고 경찰은 그를 사제관으로 끌고 와 그가 훔친 은식기를 내 놓습니다. 그때 미라엘 신부는 장발장이 미리 떠나는 바람에 은촛대를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장발장은 충격을 받습니다. 채무자로서 희망이 없던 그의 삶에 누군가 동정과 연민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 일로 장발장은 죄인으로서의 삶으로부터 도망쳐 마들렌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어느 도시에서 열심히 살아 성공합니다. 그의 인격과 겸손을 사랑한 도시 사람들은 그를 시장으로 뽑아 주었고, 마침 죽어가던 한 여인의 딸 코제트를 대신 키우며 장발장, 아니 마들렌은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날 다른 사람이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잡혀 재판에 넘겨집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그 사람이 곤경에 처했습니다. 만일 마들렌이 나서서 그가 장발장임을 밝힌다면 그는 자신이 가진 명예와 부, 사랑하는 딸, 온갖 좋은 일을 다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는 본 적도 없는 한 사람을 위해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들렌은 법정에 나서서 그가 바로 죄수로 도망친 장발장임을 밝힙니다. 이름없는 한 죄인을 위해 자신의 명예, 재산, 신분까지 모든 것을 포기한 장발장,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고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죄와 한계, 나약함을 잊지 않고 다른 사람을 대합니까? 여러분은 기억하는 사람입니까?  


기쁜 소식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채권자는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 그대의 채무를 없애주시고 그대를 보증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그대의 모든 빚을 없애고 보증하십니다. ‘이 사람 괜찮다.’ ‘이 사람 참 쓸모있다.’ ‘이 사람 사랑스럽다.’ 


우리는 예수님의 담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맡아서 보증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지금은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담에 보물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담에 보물이 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담보입니다. 


사랑을 쌓아 누군가에게 담보가 되는 것, 우리 삶의 의미입니다. 누군가에게 진정한 담보, 그 사람에게 보물이 되는 것이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드러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의 원천으로 가야합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그 사랑을 먹고 마셔 내 안에 사랑을 키워야 합니다. 배고픈 누군가 맛있고 영양가 있게 먹을 수 있는 빵, 거룩한 빵, 곧 누군가를 위한 성체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작은 사랑(love)이지만 조금씩 사랑을 키워 큰 사랑(LOVE)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증하는 제대로 된 담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보증과 담보는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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