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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

살을 빼고 싶은 사람에게 다이어트 비결,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에게 글쓰기 비결, 증권으로 돈을 벌고 싶은 사람에게 투자 비결, 성공하고 싶은 사람에게 성공 비결, 심지어 행복 비결까지 등장해 사람들의 관심을 끕니다.  


비결이 무엇인가요? 비결의 사전적 정의는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자기만의 뛰어난 방법’입니다. 어떤 것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나만의 비법 혹은 비밀, Secret라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혹시 ‘어떤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은 들어본 적 있습니까? 이런 비결이 있다면 알고 싶지 않습니까?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나는 비천하게도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필리 4,12). 


‘어떤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은 바로 하느님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 우리 말로 하면 바오로 사도의 빽은 명품 빽이 아니라 하느님 빽입니다. 


세상을 사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을 믿고 사는 방법과 하느님을 믿고 사는 방법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자신을 믿고 살았었습니다. 예전에 말씀드린대로 IMF가 터졌을 때에도 자신을 믿고 중국으로 취업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체험했습니다. 중국 십대 소녀들을 착취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흥정망청 마시고 쓰고 사람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함께 입사했던 중국어학과 출신 동기가 별 것 아닌 문제로 퇴사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아무도 그 사람을 대변해 주지 않았고 마지막 전체 직원회의에서 회장이 그만 남고 모두 나가라고 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때 사무실로 가지 않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벌판은 광활하고 하늘은 맑았습니다. 잠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 되면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생길수도 있는데 그래도 해야 할까?’ 마음을 정하고 다시 회의실로 갔습니다. 회장 앞에 있던 직원 옆에 앉아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만일 이 사람을 쫓아낸다면 저도 나가겠습니다.” 회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더니 저더러 나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사무실로 출근한 저는 제 책상이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회장 지시로 제 방에서 무기한 대기 발령이 난 것입니다. 대신, 쫓겨날뻔한 그 직원은 다시 일하고 있었는데 저를 아는채도 안했습니다. 


좁은 방에서 일주일을 대기하면서 저는 무너졌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어떤 기회나 희망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해 당황스러웠습니다.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자신을 포기하자 하느님께서 저를 선택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나 중심으로 살아온 삶이 끝나자 하느님 중심으로 옮겨갈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얼마전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나훈아의 ‘테스형’이란 노래를 들었습니다. 나훈아의 독특하고 애절한 목소리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하고 노래할 때 제 마음도 덩달아 떨렸습니다. 테스형을 몇번이고 부르며, 자신을 알지도 못하겠고 저세상은 어떤지, 천국은 있는지 묻는 가수에게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테스형은 주지 못할 대답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희망을 걸었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이사 25,9).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답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게 인간의 조건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설 수 없고 죄와 한계를 체험하다가 마침내 죽음을 맞아들여야 하는, 그래서 하느님 없이 인간이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느님은 늘 인간을 부르시기에 그 부름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습니다. 그것은 천국이 있다고 믿는 사람과 천국을 실제로 사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천국을 지금 이 자리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희망과 구원을 사랑 안에서 체험하고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름의 옷을 입고 자신을 드러내지만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모두가 혼인잔치에 초대받았지만 혼인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혼인예복이란 깨끗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 자신만으로는 늘 부족함을 아는 회개, 그리고 진실한 믿음입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탁의 노래 ‘찐이야’처럼 진짜, 완전 찐이 되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찐은 자꾸 끌리고 자꾸 쏠리게 만드는 진짜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입어야 할 혼인예복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은 하느님에게 희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항상 만족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내 모든 걸 다 줘도 아깝지 않은, 내 인생에 전부인 사람입니다. 내 심장을 훔쳐간 믿을 사람은 ‘테스형’이 아니라 ‘예수형’ 입니다.  


저는 늘 감사합니다. 제가 제 삶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저를 믿지 않기 때문에, 저를 포기했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완전 찐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저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형이 저와 함께하며 가르치고 저를 하느님에게로 이끄시니 저는 어떤 경우에도 잘 지냅니다. 찐하게 찐하게 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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