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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산

한해를 보내며 찾아가는 희망의 방향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며, 전례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벌써 한해가 다 지나갑니다. 2020년은 여러분에게 어떤 해였습니까?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한,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무엇보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 할 해 맞습니까?  


2020년 초에 갑자기 닥친 코로나19로 우리 삶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불편함을 넘어서 고통, 불안, 두려움이 인류 전체에게 그동안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지금처럼 살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인류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우리는 두렵고 불안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동안 인간의 행복, 성취만을 위해서 살아온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의 자유를 최고로 추구하며 성공과 성과를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써버린 것은 아닌지요? 목적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며, 결과가 좋으면, 물론 그것이 누구를 위한 좋은 결과인지 먼저 물어야 하지만, 어떤 과정도 용납해온 자본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의 종말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게 우리는 ‘첫 번째 산’을 맹목적으로 올랐습니다. 오직 인간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자유와 행복을 추구했고,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곡에 떨어졌습니다. 길을 잃고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이는 신앙을 잃어버린 양이 되었고, 어떤 이는 공동체와 사회에서 떨어져 흩어진 양이 되었으며, 어떤 이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부러진 양이 되었으며, 많은 이는 몸과 마음이 아픈 양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들은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들을 푸른 들판으로 인도할 믿고 의지할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세상에는 자신이 그 일에 적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영예를 누리고 최고로 성공하고픈 그들은 실은 목자가 아니라 늑대가 나타나면 양을 버리고 도망칠 삯꾼이며 왕이 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노자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세상에 왕은 네 종류가 있는데 가장 수준 낮은 왕은 백성이 침을 뱉고 경멸합니다. 그보다 수준 높은 왕은 백성이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왕이 가진 권력으로 백성을 짓누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현대사는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이런 왕들밖에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두 왕보다 수준 높은 왕은 백성이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 더 수준 높은 왕이 남았습니다. 최고의 왕은 백성이 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만드는 왕입니다. 참다운 왕은 백성에게 군림하지 않고, 그저 그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는 왕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백성이 알기도 전에 자신을 온전히 바쳐 백성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왕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왕입니다. 백성의 잘못과 온갖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스스로 골고타를 올라가는 가시관을 쓰신 분입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입니다. 자신을 바쳐 온 누리를 살게 하는,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게 조용히 자신마저 헌신하는 그리스도왕이십니다. 


우리는 참다운 목자를 갈망합니다. 우리를 푸른 풀밭에 쉬게 하며, 잔잔한 물가로 이끌어 우리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는 목자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공정으로 양떼를 먹이고 친히 시비를 가리시어 정의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유일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왕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 역시 목자의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다. 첫 번째 산이 아니라 ‘두 번째 산’을 오르기를 바라십니다. 그동안 나의 자유, 자아성취, 성공, 행복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공동체에 속함, 희생, 헌신, 기쁨을 추구하는 새로운 삶을 살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산을 올라야 합니다. 첫 번째 산에서 실패한 뒤 떨어진 계곡에서 고통의 시련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종임을 깨닫습니다. 종은 새로운 자유와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왕이 아니라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사제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친구로서 누군가에게 생명과 기쁨을 주는 헌신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착한 목자를 따르는 사람, 곧 착한 목동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작은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헌신하므로 최후의 심판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구원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에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2020년은 지나갑니다. 과거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과거에서 배우고 깨닫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미래 역시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한해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희망을 가집시다. 우리 삶의 작은 변화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시다.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여 가장 작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도록 살아갑시다. 이제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린 것처럼 기도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린 것처럼 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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