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하느님은 나의 힘, 그분께서는 내 발을 사슴 같게 하시어 내가 높은 곳을 달리게 해 주신다”(하바 3,19).
마라톤은 철저히 개인 운동이며 기록 운동이다.
마라톤을 같이 연습하고 같이 완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러너들은 혼자 연습하고 혼자 뛴다. 수만 명의 사람들과 대회에서 같이 달려도 어느 지점에 이르면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고통에 헐떡이는 자신만 남게 된다. 그리고 풀코스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은 완주가 목표지만 한번 완주를 하고 나면 기록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걸음씩 뛰어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는데 1분 1초의 에누리도 없이 주어지는 결과가 개인 기록이다.
나는 일년에 한번, 가끔은 두번, 반드시 그 세 시간 몇 분의 일년 중 가장 밀도 있는 시간을 체험한다. 몇 달에 걸친 연습과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결과가 3으로 시작되는 숫자로 표시되는 것이다. 너무 단순해서 때론 잔인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결과가 마라톤의 정직함이며 매력이다.
나의 첫 풀코스 마라톤 기록은 클리브랜드 마라톤에서 2006년에 세운 3:27:25다. 기본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 연습했지만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완주를 목표로 하고 뛴 결과였다.
그 다음해는 나름 준비를 해서 두번째 대회에 나갔는데 3:26:10의 결과를 얻었다. 그때 비로소 무작정 달리기만 해서는 기록을 단축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24주 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준비를 시작했고 2008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12분 이상 단축한 3:14:03의 기록을 얻게 되었다.
2009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면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회의 코스에 대한 정보와 훈련 방법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집중적인 언덕오르내리기 훈련과 코스 연구만이 아니라 코스에 따른 심리적인 태도와 집중 공략할 시점까지 세밀히 준비했다. 그래서 다시 7분가량을 단축해 3:07:35로 완주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파죽지세였다. 이런 기세라면 곧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3시간 이내에 풀코스를 완주하는 서브쓰리를 달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벽에 부딪쳤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감동과 영감을 안고 나는 같은 해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제40회 뉴욕 마라톤 대회 출발선에 서 있었다.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를 뛰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바로 뉴욕 마라톤 대회를 신청했는데 운 좋게도 당첨되었던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다섯 마라톤 대회 가운데 셋이 미국에 있는데 보스턴, 뉴욕, 시카고 마라톤 대회다. 나머지 둘은 런던과 베를린 대회이고, 도쿄 마라톤은 2013년부터 세계 메이저 마라톤(World Marathon Majors)이 되었다.
뉴욕 마라톤 대회는 1970년에 시작되었는데 참가비 $1을 내고 센트럴 파크를 4바퀴 도는 소박한 대회로 127명이 참가해 55명이 완주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4만 5천여 명이 참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마라톤 대회 가운데 하나로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스태튼 섬에서 출발하여 뉴욕시를 이루고 있는 다섯 개의 자치구(Borough)를 통과한다.
출발지점에서 유명한 베라자노 내로스(Verrazzano-Narrows) 다리를 지나고 브루클린에서 정통 유대인들이 마라토너들을 바라보는 이상한 눈빛을 만난다. 퀸즈에 들어서 하프코스를 지나 엄청난 퀸즈보노(Queensboro) 다리를 건너 브롱스를 향해 달려 32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면 매디슨(Madison) 다리를 건너게 된다. 마침내 맨해튼의 5번가에 들어서면 수많은 뉴요커들이 폭풍 같은 환호를 하며 맞아준다. 코스는 센트럴 파크로 이어져 끝이 나는데 뉴욕 맨하탄은 도시 전체가 일주일동안 축제 분위기가 된다.
한때 뉴요커로 한달을 맨하탄에 살면서 자전거로 누볐던 도로를 달리는 감회가 남달랐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오고 가는 월스트리트가 있지만 동시에 할렘과 같은 빈민가도 있는 맨하탄, 자본주의 풍요 속에 생존만을 위해 허덕이는 빈곤한 '제4세계'인 이곳은 그 극명한 빈부의 격차를 달리는 코스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9/11 테러로 사라져버린 쌍둥이 빌딩의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진 커다란 H빔 십자가는 상처받은 뉴요커의 영혼의 상징과도 같이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살아있음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마라토너들에 대한 뉴요커들의 열렬한 관심과 응원은 가슴 찡한 외침으로 다가왔다. 폐허 위에 불안하게 서 있는 희망은 죽음 위에 서 있는 그라운드 제로 십자가처럼, 모든 이의 가슴에도 여전히 감춰둔 떨림으로 전달되었다. 한마디로, 뉴욕은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