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서브쓰리: 벽에 부딪치다 2

특별한 도시 뉴욕에서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여세를 몰아 최선을 다해 뛰었다. 센트럴 파크로 뛰어 들어가 결승선을 통과한 기록은 3:07:52였다. 코스가 익숙치 않았고 처음으로 한해에 두번째 뛰는 마라톤이라 후반부에 체력이 떨어져 서브쓰리를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해 5월 익숙한 클리브랜드 마라톤을 달렸을 때 기록이 3:07:58였다.


‘어떻게 세 번이나 연속으로 3시간 7분대의 결과(3:07:35, 3:07:52, 3:07:58)가 나왔을까?’


그때까지 체계적인 훈련을 기초로 대회 당일 컨디션만 좋으면 언제든 서브쓰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열심히 훈련하고 최선을 다해 뛰면 기록을 계속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체력이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무엇보다 단순한 계산만으로도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가령 풀코스 마라톤에서 7분(420초)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매 킬로마다 10초씩 빨리 달려야 한다. 이 말은 백 미터를 매번 1초씩 빨리 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안다. 백 미터 기록을 20초에서 19초로 줄이기는 쉬워도(물론 이것을 420번 연속해서 성공해야 7분을 줄일 수 있지만) 11초에서 10초로 줄이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 재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 3시간 7분의 벽은 그렇게 높았다.




모든 것을 바꾸었다.


훈련 방법뿐만 아니라 4백 미터 트랙을 뛰는 인터벌 훈련과 페이스를 유지하는 페이스런을 추가했고, 32킬로미터 지점부터 체력이 저하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장거리 연습을 배로 늘렸다. 한계라고 생각했던 벽을 넘어 서브쓰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그리고 운명의 대회로 2010년 시카고 마라톤 대회를 정했다.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로서 유명한 시카고 마라톤 대회는 마침 대회일이 10월 10일이어서 유명해진 대회 홍보문구 '10-10-10’이 마치 행운처럼 느껴졌다. 보통 시카고의 10월 날씨는 11도 정도로 달리기에는 최적의 날씨며 코스도 가파르지 않고 적당했다.


1590380228319.jpg?type=w966 시카고 마라톤, 2010년


하루 전날 홀로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에 가서 대회장에 들러 번호표와 팩키지를 수령했다. 소란한 분위기와는 달리 조용히 움직였고 모텔에서 일찍 자고 출발선에 미리 가 섰다. 골인지점에서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괜찮았다. 결국은 혼자서 마주해 극복해야 할 것이었기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2010년 10월 10일 아침 7시 30분, 제33회 시카고 마라톤 대회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나에게 시카고는 클리브랜드에서 떠나 한국을 오고 가는 길에 비행기를 환승하는 이름뿐인 도시였다. 그렇지만 러너로 시카고 중심부를 달리며 시카고의 공기를 호흡하고, 시카고 사람들의 환호소리를 듣고, 유명한 시카고 바람을 맞으며 시카고를 만날 수 있었다.


계획한 페이스대로 뛰었다. 하프를 지날 때 기록이 1:30:08였으니 서브쓰리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누군가 말했다. ‘마라톤은 32킬로미터 지점에 도달하면 반이 끝난 것이다. 진짜 레이스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마의 32킬로미터 지점을 지나자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날따라 기온이 29도까지 치솟아 올랐다. ‘팔을 앞뒤로 크게 흔들자.’ ‘숨을 쉬자.’ 혼자 기본기를 만트라처럼 계속 되새기며 한번에 한걸음씩 아이처럼 뛰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서브쓰리는 서서히 녹아내렸고 발바닥이 다 벗겨지는 각고의 노력 끝에 3:05:26의 기록으로 마쳤다.




시카고 대회 이후, ‘나는 과연 서브쓰리를 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서브쓰리를 못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대답은 ‘No!' 마라톤에 입문해 계속 달리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한계인 벽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때 포기한다면 마라톤은 한때의 열정과 추억으로 끝이 나고 만다.


나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었다. 2011년 8월에 한국으로 귀국을 앞두고 5월에 있을 나의 마라톤 성소인 클리브랜드 대회에서 서브쓰리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었다. 그리고 대학원 수업 시간에 하프 마라톤 기록이 1시간 15분 대인 닉(Nick)이라는 친구를 알게 되어 레이스 후반의 나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의 도움이라도 기꺼이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6 서브쓰리: 벽에 부딪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