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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코로나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 선 마리아의 선택

여기 결혼을 앞둔 한 처녀가 있습니다. 마음은 온갖 일로 분주한 가운데 종종 결혼한다는 것이 두렵고 걱정됩니다. 한편으론 사랑하는 남자를 생각하고 있으면 마치 꿈 속의 시간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설레임과 두려움이 함께 합니다. 이때 어느날 갑자기 천사가 찾아옵니다. 생각해 본적도, 한번도 기대해 본 적도 없는 천사가 가장 바쁜 시기에 불쑥 찾아와 처녀인 자신이 성령으로 인해 아들을 잉태하여 낳는다고 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입니다. 


마리아에게 닥친 천사의 갑작스런 방문은 우리에게도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 삶에서 생각해 본 적도, 한번도 기대해 본 적도 없는 코로나19가 가장 바쁜 시기에 갑자기 들이 닥쳤습니다.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겠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일들과 앞으로 세워놓은 모든 계획과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고 과연 모든 것이 어떻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천사와 코로나는 닮았습니다. 갑자기 나타나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낸 천사와 인간이 야기한 코로나19가 다를 수는 있지만 삶에서 우연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이 둘은 비슷하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인간은 이런 갑작스런 시련이나 고통 앞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것인가?’하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다윗 왕처럼 향백나무 궁에서 우리 자신만을 위해 먹고 마시며 온갖 좋은 것을 누리며 살았는데 대신 주님의 궤는 천막에 머물렀습니다. 혹시 하느님께서 그런 우리에게 화가 나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우리의 잘못과 죄를 벌하시는 것인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다윗의 후손으로 일으켜 세우고 우리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시고 몸소 우리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마리아를 통하여 구세주를 보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두려워하지만 말고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무엇인가 배울 점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천사의 갑작스런 방문은 당연히 두려운 일입니다. 세상 것에 온통 정신이 빼앗긴 인간에게 천사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움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이 그렇듯이 우리의 첫느낌은 두려움입니다. 둘째,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인해 아들을 잉태한다고 말하자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사람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것을 이용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아이 못낳는 여자라 불리던 친척 엘리사벳의 임신 소식을 전하며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천사는 가르칩니다. 이제 마리아에게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남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천사처럼 갑자기 닥친 코로나19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음을 가져오는 이것을 당연히 두려워 피하고 싶습니다. 둘째,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봅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반성합니다만 여전히 답답할 뿐입니다. 어디에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고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셋째, 세상 모든 일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티끌만큼도 안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마리아의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역시 우리가 좋든 싫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우리의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하느님의 크신 구원 역사 안에서 지금의 상황은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믿기에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며, 마리아처럼 고백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루카 1,38).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처럼 우리가 주님의 종임을 고백하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래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삶, 우리가 세운 모든 계획과 기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마음에서 멈추고 한걸음 벗어나야 합니다. 대신 말씀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그 길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처녀인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게 된 것처럼 두렵고 걱정스럽겠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어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담담히 이 모든 일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주님의 종으로 고백하면서 어떤 일이라도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그때 코로나19도 우리에게서 떠나갈 것입니다. 마치 천사가 그랬던 것처럼. 그제서야 구원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될 준비가 될 것입니다. 


성탄은 희망의 시기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듯이 우리의 잘못과 죄 역시 하느님의 자비가 모두 감싸게 될 것입니다. 비록 구세주는 우리 가운데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겠지만 모든 진실한 희망이 그렇듯 희망은 작고 조용합니다. 크고 화려한 것,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것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남을 살릴 수 없습니다.  


희망의 구세주시여, 우리 안에서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우리가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일 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믿고 용기를 내어 주님의 종임을 고백하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믿음을 주소서. 그리고 천사와 코로나가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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