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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족

12월 27일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한해의 마지막 주일에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는 누군가에게 진정한 가족이 되어주었는지 묵상하는 날입니다. 제가 만난 가족 이야기입니다.

#1


8월 30일 주일 갑자기 스타렉스 밑에서 나타난 새끼 여섯마리. 어미 개는 도망가고 없는데 꼬물거리는 새 생명은 놀랍고 두렵고 반가운 것이었다. 한때 군위성당에서 개를 키웠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생명을 잘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포기했었는데 갑자기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가족도 그렇다. 우리 중 누구도 가족을 선택한 사람은 없다. 가족은 갑자기 주어진다. 주어진 가족에게 최선이라면 나는 어떤 가족이 되어줄 수는 있는가 하는 것이다.


#2


사람을 피해다니던 유기견 별님이도 스타렉스 밑에 숨어서 내게 가족이 되어 줄 수 있냐고, 한번이라도 누군가를 마음을 다해 책임질려고 한 적이 있는지 묻고 있었다. 내가 원했든 그렇지 않았던지 가족이 생겼다. 먹여 살릴 식구가 딸린 가장이 되었다. 부담 백배!


#3

스타렉스 밑에서 사는 별님이와 새끼 여섯마리가 안쓰러워 성당 뒷마당에 나름 멋진 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새끼들을 옮겨 놓았는데도 집에 입주하지 않는 별님이. 짖지도 않고 도망만 다니는 녀석이 안타깝지만 해 줄 수 있는게 없었다. 음식도 주고 새끼를 들고서 꼬셔도 보았지만 개집에는 들어오지 않는 녀석, 마음대로 안된다. 가족도 그렇지 않은가. 내 마음대로 되는 가족이 있을까.


결국 참다 못해 포획작전에 돌입한다. 소방서에 연락해 소방관들이 오고, 군청 축산과에서도 왔지만 모두 포획에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신자들을 모아 헨스로 성당 차고 문을 막고 차 밑에 숨어 있는 녀석을 억지로 끄집어 내어 목줄을 채웠다. 드디어 개집에 입주시켰다.



좋은 것을 주고 싶어도 받는 이가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그리고 개에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꼭 필요한 것이라도 결국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일 뿐이지 않는가.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도 결국 부모의 생각 아닐까. 그리고 자녀는 그 자신이 부모가 되기 전에는 절대 부모 마음을 이해 못한다. 내가 별님이의 마음을 절대 이해 못하는 것처럼!


하느님 보시기에 우리 인간도 그렇지 않을까. 제 멋대로 돌아다니고 하느님 품으로 오라고 손짓해도 절대 들어오지 않고 주변만 떠돌며 고집만 피우는 인간, 하느님 보시기에 완전 개판이 아닐까.


#4


한 달된 새끼들이 정말 귀엽다. 항상 이 상태면 좋겠다. 생기발랄하고 호기심 넘치고 사랑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 그래서 자녀가 아기였을 때 평생 할 효도를 다한 것이니 부모는 자녀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열심히 뛰놀다가 지쳐 아무데나 쓰러져 자는 녀석들, 개피곤 한가 보다 ㅎㅎ 그래도 너무 이쁜 녀석들.


#5


동시에 무자비한 새끼들. 잠시도 쉬지 않고 어미 젖을 빨아대고 계속 괴롭히는 마한(망할) 놈의 짜슥들(자식들). 자식을 키우는 어미의 마음과 고생을 본다. 그래도 짖지도 않고 젖을 물리고 하나씩 핥아주며 자신의 몫을 다하는 별님이.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마지막

한달 반 뒤 여섯마리 새끼를 다 분양시켰다. 돌아온 싱글이 된 별님이!

한동안은 잘 지내더니 어느 날부터 밥을 잘 먹지 않고 시무룩해 하더니 배변도 잘 안되는 시기가 왔다. 그러다가 동네 개들이 성당 뒷마당으로 오기 시작했는데 쫓아내도 계속 오더니 급기야는 개집 안에서 별님이 밥까지 먹었다. 다시 임신하면 안 된다는 불안 때문에 서둘러 개집에 새로운 망을 설치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밥을 주러 갔는데 망을 뚫고 들어와 개 우리에 같이 있는 동네 양아치 개 둘을 발견했다.

들어온 곳을 막고 서 있으니 개장 안에서 어쩔 줄 몰라 온데를 뛰어 다니다가 망을 기어오르는 녀석을 가까이에 있던 나뭇가지로 한대 때렸다. 그랬더니 깨갱하더니 고개를 땅에 묻고 떨기 시작했다. 다른 녀석은 무서워 얼음이 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나 벽돌을 들었다. 


그 순간 문득,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있는거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밥 두 번 주고 산책 한 번 시켜주는 댓가로 별님이를 붙들어 묶어 두고 다른 개도 못 만나게 한다는게 말도 안되는 것 같았다. 개도 살아있는 생명인데 제 방식대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벽돌을 내려놓고 별님이를 풀고 문을 열어 놓고 그냥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하루 다른 개들과 잘 놀던 별님이는 어느새 성당 뒷마당에 와 있다. 잠도 뒷마당에서 자고 어디 가지도 않고 문 닫힌 개집만 바라보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안쓰럽다. 자유와 빵을 동시에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온 동네 개들이 다 모여들테니.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새 점점 야위어 가는 별님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건 도저히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별님이를 다시 붙들어서 믿을만한 신자 집으로 보냈다. 딸을 시집 보내는 마음이었다면 조금 과한가.


가족이란 무엇일까?

때론 남들 안 볼 때 어디가서 몰래 버리고 싶은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려울 때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다.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 사랑의 추억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아무리 줘도 모자란 것 같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줘도 미안하고, 늘 부족한 것 같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어땠을까?

완벽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넘어서 가장 인간다웠을 것이다. 때론 고집을 피우는 예수, 12살 때 멋대로 부모님을 떠나 성전에 머물렀던 사건을 생각해 보면 가끔 부모님 속을 썩였을 것이다. 서른 살이 되기까지 결혼을 안 했으니 그것도 부모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남편 목수 요셉의 벌이는 변변치 못했을 것이니 마리아는 틈틈이 일해야 했고 늘 피곤했을 것이다. 성가정은 완벽한 가정이라기보다 부족한 서로에게 의지하고 사랑으로 하나된 가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별님이와 새끼들과 보낸 백일의 시간을 통해 느낀 가족은 아무리 사랑해도 부족함이 느껴지고, 때론 미워서 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가장 사랑스러운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게 하는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존재다. 집, 홈, 가족! 이보다 더 따듯하고 더 소중한 이름이 우리에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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