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누군가 나를 위해 꾼 태몽

스스로 종이 되는 삶

1월 초, 잘 아는 청년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1월 1일 새해 첫 날, 꿈에 제가 나왔다며 즐겁게 이야기 했습니다. 머쓱해진 제가 어떤 꿈이었는지 물으니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부님, 꿈의 배경은 대구가톨릭대학교 본관 옆 벤치였어요. 제 대학교 동기 세 명과 학창시절이 생각나 학교에 갔어요. 학생 때 먹었던 학교 식당밥 이야기, 교수님들 이야기 하면서 걷다가 우연히 신부님을 만났고 그곳이 본관 대구은행 옆 등나무가 있던 벤치였어요. (지금은 없을 수도...제 기억에는 있는 곳) 날은 맑고 밝았고 신부님이 즐겨 입으시는 곤색 마이(?) 입고 계셨어요 ㅋㅋㅋ 벤치에 둘러앉아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들 신자가 아니라 신부님을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친구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소개한 뒤, 신부님이 "신부는 말이야" 라고 하시면서 아래와 같은 대사를 남기셨죠.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일, 사제로 사는 삶은 세상에 괴롭힘을 당하는 거야. 그걸 받아들이는 일, 정상적이진 않지만 난 좋아. 난 괴롭힘을 당하러 간다.”하고 웃으셨어요."





그로부터 며칠 뒤 대구가톨릭대학교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에게 그 꿈이 악몽이 아니었다면 가족 중 누군가 대신 꾼다는 태몽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더 확실하게 든 것은 대학교로 이사온 며칠 뒤 아침 미사에서 들은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2티모 1,6-8).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 바오로 사도가 말한,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이자 복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자유'란 내 마음대로 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란 바로 '자기의 이유', 곧 자신이 세상에 온 까닭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세상에서 성공이 아니라 헌신을 추구하며, 행복보다는 기쁨, 자아성취보다는 공동체에 속함을 선택해야 합니다.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모두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마르 1,37)하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칭송하며 같은 편이 되기를 바랄 때에도 그 유혹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자기의 이유를 아는 까닭에, 오늘 예수님처럼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하고 말합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을 찾고 누구와 대화합니까? 매일 아침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때론, 괴롭힘을 당하러 가는 일조차 자기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