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살아있는 사람 7: 157명이 달리다 2


'살아있는 사람 7(Living Person 7)'은 미국에서의 나의 마지막 마라톤이었다. 또한 마라톤을 시작할 때부터 꿈꿔왔던 서브쓰리에 대한 결판의 날이었다.


하지만 먼저 나의 목표보다는 사라를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총장 신부님을 찾아가 '살아있는 사람 125명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2011년은 존 캐럴 대학이 설립 125주년을 기념하는 해로서 많은 행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냐시오 성인(St. Ignatius of Loyola, 1491-1556)의 가르침인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땀과 시간을 쏟는 '125년을 기념하는 125명의 달리기 선수들(125 years, 125 runners for others)' 이야말로 가장 존 캐럴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클리브랜드의 복지센터와 마다가스카의 홈리스 쉼터를 위해 $12,500을 모금하면 좋겠다고 했다.


총장 신부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살아있는 사람 7은 캠퍼스에 마라톤 붐(boom)을 일으켰다. 달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황금색 러닝셔츠만이 아니라 대회 때 물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셔츠도 제작했다. 캠퍼스에서는 자신이 뛰는 거리에 맞춰 그룹별로 훈련을 했고, 나는 인터넷으로 달리기 방법을 소개하고 격려했다.


‘살아있는 사람(Living Man)’의 이름도 바꾸었다. 대학생들이 살아있는 ‘사람(Man)’이 남성 편향적이라 하여 좀 더 포용적인 ‘사람(Person)’으로 바꾸자고 건의하였기에 ‘살아있는 사람(Living Person)’이 되었다.


대회 전날 토요일에는 대학교 성당에서 살아있는 사람과 후원자들이 모여 후원금 봉헌과 감사미사를 바쳤다. 미사 후에는 스파게티 파티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있는 사람 7은 대학생, 교수, 직원, 한인본당 신자들, 신부님들까지 157명이 등록했고, 성금도 목표한 금액을 훨씬 뛰어넘는 $23,673.20을 모금했다.


살아있는 사람을 준비하고 이끌었던 나의 이야기는 사진과 함께 지역신문(The Plain Dealer)에 크게 났다.


The Plain Dealer, 2011년


다른 사람을 위해 달리는(Running for others)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사라를 위해 달리는(Running for Sara the beautiful) 나의 이야기가 칠년동안 자라나 맺은 열매였다.


7년전 두명의 신학생이 7년동안 202명의 다양한 살아있는 사람으로, $120의 첫 정성이 7년동안 $37,910.20로 늘어났다. 무엇보다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이 변화가 되어야 한다는 간디의 말을 실천하고 있음이 뿌듯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미국에서의 나의 7년 마라톤 역사의 이정표로 서브쓰리를 달성하는 것이다.


서브쓰리를 위해서, 2011년


2011년 5월 15일 새벽, 클리브랜드 시내 주교좌성당 앞에 황금색 셔츠를 입은 150여 명의 살아있는 사람이 모였다. 그들 앞에 선 나는 손을 펼쳐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바쳤다.


2003년 아무것도 모른 채 미국으로 왔던 두려움 가득했던 신학생이 이제는 달리는 신부가 되어 큰소리로 축복의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초원이였던 한 신학생의 조그만 상상이 자라나 수확을 앞둔 황금벌판의 풍성한 곡식을 바라보는 넉넉한 마음이었다.




7시 정각 출발 총성이 울렸다. 날씨는 좋았고 컨디션도 괜찮았다. 잘 달렸다. 하프를 지날 때 기록이 1시간 29분대였고, 닉이 합류해서 나를 끌어주었다. 중간에 비가 내렸지만 서두르지 않고 계획한 페이스대로 뛰었다.


호흡 하나, 발 한걸음이 모든 것이었다. 이렇게 찐하게 한순간 한순간을 살아있음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치 내 안에 깊숙이 감춰져 있던 하느님의 숨과 성령의 불이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마지막 급수대를 지날 때 백여 명의 존 캐럴 대학생들이 연도에 나와 “H.Paul! H.Paul!"을 소리치며 서브쓰리를 응원했다. 호흡은 거칠었고 팔은 무거웠지만 계속 뛰었다.


결승선이 보이는 코너를 돌아서면서 닉의 응원을 뒤로하고 혼자 내달렸다. 다리는 기계적으로 움직였고 심장은 남은 힘을 다해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멀리 기록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앞 숫자가 3이었다. 절망했다. 아, 그렇게 뛰고도 3시간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3:01:25.




마라톤을 하는 사람은 안다. 3시간 1분 25초의 기록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쉬운 기록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비단 86초의 물리적인 시간의 거리만이 아니라 서브쓰리라는 육체적 한계를 얼마나 절실하게 뛰어넘고 싶은가 하는 마음과 정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내가 미국에서의 마지막 마라톤에서 서브쓰리를 했더라면 나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이봉주가 된 것처럼 귀국했을 것이다. 하지만 86초의 모자람이 나를 고개 숙이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나는 아직도 목마름을 느끼며 꿈을 꾸고 있다. 어쩌면 서브쓰리는 나에게 허락되지 않을 미지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그 목표를 바라보며 뛰면서 꿈꾸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믿는다. 오히려 그 꿈을 바라보며 계속 달릴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긴다.


살아있는 사람 7,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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