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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

나의 초등학생을 만나 놀란 마음으로


친구가 어느 초등학교 게시판에 붙은 글이라며 보내왔다.


제목은 "내 인생을 책으로 쓴다면 그 첫 구절은?"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필자의 이름이 '김성래'다)가 거기에 있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운명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바꿀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초등학생 김성래가 쓴 글을 보고 한참 생각했다.


모든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바꿀 수 없는 것일까.


나의 초등학생은 여기에서 운명 예정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운명이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 곧 운명의 숙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내게 주어진 운명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 운명 앞에 선 나는 다른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도에 어떤 젊은이 이름이 ‘파파카’였다. 왜 그런 이름이 지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뜻은 ‘나쁘다’이다. 젊은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부를 때마다 ‘나쁘다’하는 것이 너무 듣기 싫었다. 그래서 동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분에게 가서 이름을 바꾸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다. 지혜로운 이는 ‘여행을 떠나 사람들의 이름을 물어본 뒤 결정하자.’하며 그를 보냈다. 


여행길에 젊은이는 장례행렬과 마주쳤다. 죽은 이가 누구인지 물으니 ‘지바카’라고 했다. “지바카는 ‘살아있는 자’ 아닌가요?”하고 되물으니 누군가 대답했다. “이름이 ‘살아있는 자’든 ‘죽은 자’든, 때가 되면 죽을 수밖에 없네. 이름은 단지 어떤 사람을 가리키기 위한 단어일 뿐이야.”


다음에 젊은이는 길을 가다가 어떤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맞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왜 그런지 물으니 갚을 돈이 없는 남자가 빚진 이에게 맞고 있는 것이라 했다. 매맞는 남자의 이름은 ‘다나팔리’, 곧 ‘부자’였다. ‘왜 부자가 돈이 없지요?’하고 물으니 누군가 대답했다. “이름이 부자이든 빈자이든 돈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나? 이름은 단지 그 사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에 불과할 뿐 진짜 모습이 아니야.”


이제 젊은이는 무언가 느낀 것이 있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길 잃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의 이름은 ‘판타카’, 곧 ‘길 안내자’였다. ‘어떻게 길 안내자가 길을 잃을 수 있죠?’하고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이름이 길 안내자이든 관계없이 나는 지금 길을 잃었네. 이름은 단지 어떤 사람을 가리키기 위한 하나의 단어일 뿐이야. 그 사람의 실체가 아니잖는가.”


지혜로운 어른을 다시 만난 젊은이는 말했다. “이름이 ‘살아있는 자’여도 죽을 수 밖에 없고, ‘부자’라는 이름을 가졌어도 돈이 한푼도 없을 수 있고, ‘길 안내자’라 해도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름이라는 것이 단지 어떤 사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이며 행위입니다. 그것이 그의 진정한 이름입니다. 저는 제 이름에 만족하기 때문에 이름을 바꿀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운명을 믿어야 할까? 내게 주어진 이름처럼, 내게 주어진 운명같은 것이 나를 결정할 것이라 믿어야 할까? 그런 것들은 많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 곧 나의 가족, 주변 환경, 다른 사람들, 타인의 시선까지도 이름이나 운명처럼 내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결국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불과할 뿐이다. 단어나 말, 혹은 다른 사람일 뿐이다. 그것을 내가 어찌하려는 마음을 접고 편히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나의 초등학생이 말하는 것이 아닐까.


운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이 지나가는 것임을 알고,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에 이르는 과정, 그것이 운명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하늘을 열고 닫는 것은 오직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름이나 운명은 나를 결정짓지 않는다. 그래서 운명은 나의 것이다.


"I am the master of my fate,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William Ernest Hen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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