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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기일에

마지막 선물

2013년 5월 3일 오늘 오전 8시 12분, 어머니는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고 돌아가셨다. 가족들이 모두 어머니 병상에 모여 묵주기도 5단을 마친 순간이었다.


삼년동안 2차에 걸쳐 24번의 항암치료를 이겨내신 어머니는 열심히 살아오신 그 모습 그대로 찐한 이별을 준비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금요일 오전부터 주일 밤까지 우리 삼형제는 밀려드는 문상객을 맞느라 정신이 없었고, 월요일 오전에야 4일장으로 어머니를 군위묘원에 모실 수 있었다. 돌아보면 그것은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세상에 남은 형제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우애를 돈독히 하는 시간을 남겨주신 것이다.




산다는 것은 견디는 일이 팔할 이상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사소한 일, 해야 할 일, 쓸데없는 일을 하며 버티는 것이 인생이다. 젊었을 때는 무슨 대단한 일을 할 것처럼 망상을 하고 마음대로 행동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도 주었다. 마치 답을 아는 것처럼 야심차게 나아갔지만 얻은 것은 실망과 후회 뿐이었다. 한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살면 살수록 삶이 무엇인지 더 모르겠기에 하물며 죽음이야 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지 8년이 지났다. 어느때 보다 어머니를 빨리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어느날 호스피스 병동을 나와 병원 마당을 산책하다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지, 천국은 믿는지.'


어머니는 대답하셨다.


"꿈에 아주 아름답고 화려한 꽃밭에 갔었지. 온갖 꽃이 피어난 그곳에는 돌아가신 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있었단다. 천국이 그런 곳이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아."


해마다 어머니 기일이 되면 남은 식구들이 모인다. 영혼의 반을 잃은 아버지와 삼형제, 그리고 늘어난 식구들이 다시 하나되는 시간이다. 죽은 사람 때문에 산 사람들이 덕을 본다. 오랜만에 만나 잘 먹고 쉬고 모여 앉아 어머니 험담도 하면서(물론 좋았던 이야기도 하지만) 긴 밤을 같이 보낸다. 서로의 안부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의례같은 시간이다.


조카들이 쑥쑥 자라는 것을 볼 때마다, 어머니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부쩍 나이가 든다.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동안 몰랐던 삶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너무 애쓰며 아둥바둥 살 필요가 있을까. 어느 지점에서는 만족하는 법, 감사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지상에서의 시간은 길지 않다.


좋든 싫든 피할 수 없는 시간, 돌아가신 때만이 아니라 해마다 어머니가 불효자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살아계실 적에 늘 양말을 거꾸로 벗어놓아 '이 마한(망할) 놈의 자슥아!'하고 욕을 먹었는데 요즘은 그 목소리가 그립다.


오월은 내게, 그래서 늘 무겁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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