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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걷는 법

고도(孤島)에서 침묵 속에 발견한 희망

일년 늦게 마라도 가는 배에 올랐다. 작년 8월 군위성당 본당신부로 있을 때 주일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데리고 제주도 4박 5일 성지순례를 준비했었다. 기금 마련을 위해 수제맥주와 직접 튀긴 통닭을 판매하는 '주일학교 성지순례 후원을 위한 1박 2일 호프'도 열었었다.


하지만 8월에 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인해 막판에 아쉽게도 성지순례를 취소해야 했었다. 이제 나 혼자 그들의 마음을 안고 마라도 가는 여객선에 올랐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에 가는 길은 특별하다. 이 땅의 가장 남쪽 끝에 가는 것은 우리 영토의 경계를 확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한계, 상상의 끝을 넘어서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 영토의 최동단 독도의 두 섬을 찬찬히 둘러볼 기회를 가졌던 나로서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시간이었다.




마라도에 도착하면 배에서 천천히 내려 출발지점에서 짐을 다시 챙기는 것이 좋다.


마라도 걷는 법 첫째는, 5분 정도 기다린 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시계 반대방향이 아니라 시계방향으로 울타리를 따라 조용히 혼자 걷는 것이다.


혼자 걷기 시작하면 군중 속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람과 풍경, 자연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다. 고도 마라도에서는 말이 필요없는 침묵이 어울린다. 바람에 흩날리는 자신의 머리칼만이 작은 소리를 더할 뿐이다.



두번째는, 천천히 걸어야 한다. 보통 하루에 4-5번 운행하는 여객선은 마라도에 도착하면 1시간 30분 정도 체류할 수 있지만 표를 끊을 때 미리 이야기하면 그 다음 배로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2시간 30분의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혼자 천천히 걷다보면 걸음을 따라 마음과 영혼도 함께 걷기 시작한다. 세상의 끝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조용히 천천히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첫번째 건물이 바로 마라도 성당이다. 전복껍데기 형상의 성당에 예수님의 오상을 상징하는 다섯 창을 통해서 자연 채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레고리안 성가가 나오는 아무도 없는 성당에 들어서면 아늑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작년에 군위성당 주일학교 성지순례 때 이곳 성당에서 다같이 미사를 봉헌하기로 계획했었는데 전복 속에 앉으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마라도를 걷는 세번째 방법은 가볍게 걷는 것이다. 섬에 핀 이름없는 꽃들을 보고 멈추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하고, 다양한 짜장면집을 보는 것도 재미다. 카트에 앉아 손님을 맞이하는 개도 반갑다.




마지막은 진하게 걷는 것이다. TV 광고의 짜장면이 주된 관심이 아니라 이 땅의 마지막 장소에서 우리 자신의 마지막, 삶의 의미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마라도 성당을 건립한 민성기 요셉 신부님(1958-2004)의 말씀이 새롭다.


"이제 시작입니다. 끝은 돌아서면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입니다. 마라도는 우리 땅 끝이 아니라 우리 땅의 시작입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렇게 마라도는 시작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라도에 서면 희망이 보입니다."


그렇다. 마라도에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을 생각하게 되고,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조용히 천천히 침묵하며 가볍고 진하게 마라도를 둘러 본 뒤 새로워진 나로 마라도를 떠난다.




송악산 선착장에 돌아와서 송악산을 오른다. 송악산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다 옆에 형성된 이중분화구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 최후의 방어기지로 아직도 남아있는 동굴과 무기고가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도 높다.



하지만 중국 자본이 송악산의 많은 부분을 사들여 리조트로 개발하려고 하는 까닭에 송악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이렇게 아름답고 특별한 곳에 외국자본의 호텔이 들어선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때 파타고니아에서 진행 중인 캠페인이 떠올랐다: "송악산, 그냥 이대로 놔둡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시간을 내어 시청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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