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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종과 중섭

서귀포에서 만난 두 화가

제주시에서 1100도로를 타고 서귀포시로 넘어갔다. 햇볕이 쨍쨍한 날씨가 눈비를 만나더니 서귀포에서는 빗방울이 흩날린다. 서로 다른 느낌의 두 도시 사이에 한라산이 있다.


서귀포에서 유명한 두 화가를 만났다. 이왈종(1945-)과 이중섭(1916-1956).


이왈종 화가는 '제주생활의 중도(Golden mean of Jeju living)'라는 제목으로 30년 넘게 제주 서귀포에서의 삶을 다양하게 그려오고 있다. 반면에 이중섭은 한국전쟁을 피해 1951년 서귀포로 피난와 약 1년간 거주했었다. 시대는 다르지만 왈종과 중섭 두 화가는 여러가지 면에서 예술가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왈종미술관은 정방폭포 입구에 조선백자를 닮은 아름다운 건축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살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자신만의 미술관과 작업공간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중섭은 미술관이나 작업실이 없었다.


왈종미술관


왈종의 작업실과 집은 왈종미술관 3층에 있다. 옥상정원에서 요가를 하며 자신만의 공간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경계를 넘나드는 중도(中道)의 그림을 그리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중섭은 1.4평 방에서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살았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했으며, 물감이나 붓 살 돈이 없어 연필이나 못으로 스케치북 대신 합판이나 맨종이, 담뱃값 은지에다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 가족의 1.4평 방


화려한 3층 건물과 초가집 한 귀퉁이의 삶은 현대 시대와 과거 일제 강점기 및 한국전쟁의 시대를 극명하게 대비해서 보여주는 듯 하다. 중도를 표방하며 현대판 풍속화를 그리는 왈종의 그림에는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골프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남녀간의 적나라한 춘화도 등장한다. 하지만 중섭은 풍경, 가족, 어린이, 소와 같은 살아있는 삶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이중섭의 '포옹'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 말은 왈종이 그리는 그림의 주제라 할 수 있다. 삶은 평등하고 누구나 육체의 고통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러나 중섭에게 인생이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에게 삶은 불공평했고, 그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위안과 평안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왈종과 중섭을 하루에 동시에 만나면서 그들에게서 나의 두가지 모습을 본다.


짧은 인생을 즐겁게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리고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고 싶은 왈종의 마음과 고통 속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그 길이 고난의 연속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었던 중섭의 마음이 내 안에 같이 있었다.


왈종의 멋진 취미와 적나라한 성 묘사를 통해 희희낙낙하는 그림과 중섭의 일상의 고통 안에서 삶에 대한 진실한 모습이 담긴 그림 사이에서 나는 갈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생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점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내게 왈종과 중섭은 같은 화가로서 서로 다른 시대를 대변하지만 동시에 '너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하는 준엄한 질문에 대해 선택하도록 묻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내내 서귀포를 걸으며, 내 마음은 비록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삶의 준엄한 명령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살아간 중섭을 더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알았다.


이중섭의 집은 초가집의 가장 오른쪽 귀퉁이에 문이 열린 공간으로 3.3평이 전부다.


결국 왈종은 좋은 시절에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는 훌륭한 화가일지는 몰라도 중섭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의지와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진실함과 천재성에서는 여러 걸음 뒤쳐질 수 밖에 없다.


중섭의 좁은 방에 붙여 둔 그가 쓴 시처럼, '외롭고 서글프고 그립기에 아름다운 삶'을 나는 더 갈망하게 된다.


이 편지화는 둘째 아들 태성에게 보낸 것이다. 두 아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아빠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유사한 편지화를 두 아들에게 각각 1장씩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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