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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도 멈춤이 필요해

쉬어 가는 하루

삼십일 대침묵 피정이 절반에 도달하면 하루 쉬는 날이 있다. '브레이크 데이'라고 불리는 이 날은 피정 참가자 모두 대침묵을 해제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교의 시간을 가진다. 삼십일이라는 긴 피정을 끝까지 잘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간이다.


마찬가지로 여행에도 멈춤이 필요하다. 지난 6월말부터 쉼없이 달려왔으니 오늘 하루는 일정없이 쉰다. 아침, 점심을 집에서 먹고 커피 한잔을 놓고 일상의 대화를 길게 이어간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서로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아채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시간마저 천천히 간다.




제주도는 화산으로 형성된 섬이기에 현무암이 만든 흙색이 검다. 그 검은 색이 잘 드러나는 해수욕장으로 검은 모래로 유명한 '삼양해수욕장'이 집 가까이에 있다. 검은 모래 찜질은 관절염과 무좀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 일정없이 쉬다가 해수욕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해수욕이 아니라 담수욕이 되었다. 그 이유는 삼양해수욕장 가까이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에 몸을 담구었기 때문이다. 바다의 짠 물이 아니라 현무암으로 스며든 물이 해안 가까이 땅에서 솟아나는 담수로서 용천수는 오랫동안 제주도 사람들에게 식수로 사용되었다. 제주 사람들이 해안가에 살았던 가장 큰 이유가 용천수에서 마실 물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샛다리물'이라고 불린 삼양동의 용천수는 물이 좋아 나쁜 기운을 상징하는 까마귀(새)를 쫓아내는 '샛다림(새쫓음)'을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용천수를 물허벅에 길어 매일 지고 날랐다고 한다.


30도가 넘는 한 여름에도 15도에서 18도를 유지하는 용천수에 몸을 담그니 대단히 차가웠다. 마치 깊은 산 속 계곡물에 몸을 담근 것처럼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냉수욕으로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다. 


삼양해수욕장 옆 용천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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