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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말고 남쪽으로 튀어

제주도 환상자전거길 종주 첫날

남풍이 거세게 불어오는 모슬포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분명히 내리막길인데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 페달을 밟아야 내려간다. '참 애쓴다' 싶어 동료에게 물었다.


"우리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지?"


한 친구가 말했다. "미쳤거든요."


다른 동료가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왜 제주도 환상자전거길을 종주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길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모든 매혹적인 것이 그러하듯 좋은 것은 값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온 몸으로 값을 치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긴 여정을 출발하기에 앞서 미사를 봉헌했다. 모두 무사히 몸과 마음 건강히 종주를 잘 마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아침 7시 10분에 출발했다. 자전거 한 대가 뒤쳐지기에 물어보니 기어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한다고 한다. 자전거 수리점에 들려야 한다.


구제주 산지천을 지나는데 제법 비가 내린다.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구운계란, 커피로 아침을 먹고 자전거 수리점에 들러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달리면 된다.



용두암 인증센터에서 첫 도장을 찍고 내친김에 다락쉼터 인증센터까지 갔다. 간간히 비는 내리는데 햇살도 비친다. 잠시 쉬면서 망고스무디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애월과 협재를 지났다.


한림으로 접어들자 남풍이 불기 시작한다. 거대한 풍력발전기 수십기를 눈 앞에서 돌리는 그런 바람이 분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계속 가는 것 뿐이다.


해거름공원 인증센터에서 세번째 도장을 찍고 밥집을 찾는데 그리 많던 밥집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한경면 바닷가 외딴 곳에서 꼬막비빔밥과 문어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점심을 먹고는 카페에서 쉬면서 해가 좀 기울어지면 출발하려 했으나 거센 바람 때문에 이미 오후가 한참 지나고 있었다.


차귀도를 보면서 천신만고 끝에 그곳에 표착했던 김대건 신부님 생각이 났다. 우리도 그렇게 용수성지에 다다랐고, 차귀도를 바라보며 에스프레소 더블을 한잔했다.


남은 힘을 다해 모슬포항까지 바람과 싸우며 나아갔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모슬포항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 열 시간 동안 잠시 쉬고 먹고 마시고 한 시간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제주 바람과 함께 달려 오늘 계획한 80킬로미터를 다 탔다. 이제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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