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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탈출

환상자전거길 종주 셋째날

살아있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다. A man fully alive never hurries. (박노해의 '걷는 독서' 중에서)


제주도 환상자전거길 종주 셋째날이 밝았다. 이제 제주시 삼양동 숙소까지 남은 거리는 80킬로미터. 폭염이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서둘러 목적지로 바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보통 우리에게 익숙한 여행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빠르게 이동해서 그곳을 빨리 둘러보고 다시 다음 목적지로 옮겨가는 것이 아닌가. 정말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여행 방식인가 물었다.


또 다른 일탈로 제주도를 탈출하면 어떨까. 성산일출봉에 도착해 바프와 함께 섬 속의 섬, 우도로 들어가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우도 검멀레해안


아침 8시 30분 여유있게 출발해서 10시 30분에 성산일출봉에 도착했다. 팬션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맡기고 11시 30분 우도로 들어가는 배에 올랐다. 짐을 다 내려놓고 바프와 함께 나서니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우도는 섬 둘레를 자전거로 돌면 17킬로미터 정도로 천천히 돌면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하우목동포구에서 내려 시계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차량과 오토바이로 정체가 곳곳에 일어났다. 우도 자전거 안내를 보니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어느 시기에 가도 아름다운 우도를 우리는 지금 가고 있다.



우도 바다는 조용하고 맑고 다정하다. 그동안 바람과 함께 포효하던 바다와는 사뭇 다르다.


점심은 해물짬뽕이다. 처음으로 제때 먹는 점심과 짧은 휴식이 달콤하다. 무엇보다 서둘러 가야할 목적지가 없으니 마음이 한결 여유있다.


우도 해물짬뽕


태양은 여전히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어 잠시 검멀레해안에 멈춰 망고 주스를 한잔 마신다. 좋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섬 속의 가장 거룩한 공간은 우도성당이었다. 2019년에 새롭게 봉헌된 아름다운 우도성당을 다시 방문했다. 섬 한 중간에 관광객은 하나도 없는 조용한 성당에 앉으니 기도가 절로 나왔다.


우도성당


1997년 벨기에 항구도시 오스텐드 성당에서 바쳤던 기도가 떠올랐다. 한달 반의 배낭여행을 마치면서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에 앞서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바쳤었다.


그때처럼, 자전거 종주길의 막바지에 한달여의 제주도의 시간을 돌아보며 우도성당에서 감사기도를 바쳤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쉬면서 성산일출봉에서의 하룻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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