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Going Home

바프와 함께 제주도를 떠나며

새벽 5시 아직 대지에 어둠이 가득할 때 팬션을 나섰다. 성산일출봉을 몇 번 올랐지만 이렇게 이른 아침에 일출을 바라보기 위해서 오른 적은 없었다.


이제 나는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자로, 이방인이 아니라 친구로 제주의 아침을 맞는다.

성산일출봉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새로운 시작,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내가 희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나를 만들어간다. I do not make hope, hope makes me in passing. (박노해의 '걷는 독서' 중에서)


성산일출봉의 힘찬 기운을 안고 마지막 길을 떠난다.


성산일출봉에서 바라본 일출


라트반 Radbahn 이라는 카페에 잠시 멈춘다. '자전거 도로'라는 이름의 카페 사장님은 자전거에서 내리는 우리를 보고는 가게 밖으로 나와 맞아주셨다. 가게에는 브롬톤이 4대나 전시되어 있다.


자전거 종주 네번째 날에서야 모닝 커피와 스콘, 거기다가 당근 케익까지 먹는 호사를 누린다. 사장님은 서비스 커피, 치즈케익까지 공짜로 주신다. 무엇보다 자전거 여행자끼리 나누는 환대가 반가운 곳이다.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라트반


11시 40분에 김녕에 도착하고, 12시 30분 함덕해수욕장에 도착하여 제주 환상 자전거길 종주의 마지막 도장을 찍는다. 234킬로미터 여정을 마무리하며, 길을 나설 때는 길동무가 있으면 좋고 열린 마음으로 여행을 할 때 길을 잃는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음을 배운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완주 도장




(BGM on 김윤아의 'Going Home')


자전거 종주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생각한다. 처음 돌아갈 집은 제주시 삼양동 숙소이며, 내일 집은 경산시 하양읍이 될 것이다.


우리 인생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닌가. 과연 우리의 마지막 집은 어디일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종종 묻는다.


2021년 여름 제주도를 나의 집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바프와 함께 제주도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나의 걷는 제주 독서'는 제주4.3에서 놀라고 슬퍼하며, 한라산을 오르며 위로받으며, 마라도와 우도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제주 카페와 맥주, 그리고 맛집에서 웃으며, 안도 타다오와 이타미 준에게서 영감을 얻으며, 추자도를 바라보며 김대건 신부를 기억하며 바친 미사에서 그 절정에 다다랐다.


이제 나는 환상 자전거길을 종주하면서 제주도를 관광객이 남기는 여기 저기 점이 아니라 자전거 여행자가 이어가는 선으로 안는다. 내가 느낀 사랑에 대한 놀라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꼭 껴안는다.



바프와 함께 제주도로 떠나며 한가지 다짐을 했었다. 하루에 한가지 이야기를 쓰자. 


온 몸으로 살아낸 하루는 삶의 이야기를 남긴다. 나만의 이야기가 없는 하루는 살아도 산 날이 아니다. A day lived thoroughly leaves behind tales of life. A day without tales of myself was lived yet not lived. (박노해의 '걷는 독서' 중에서)


그렇게 나는 지난 한달을 온 몸으로 매일 매일 살아냈다.


이제 바프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나의 다음 집에서 펼쳐질 이야기를 기대하며.


바프와 함께 제주도에서
이전 29화 제주도 탈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