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부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공간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승효상의 다방 물볕

하양무학로교회의 친구가 생겼다!


길 앞 '다방 물볕'이다.


물볕 다방 문에는 이런 작은 글귀가 있다.


'물볕은 하양(河陽)의 순 우리말이다. 물에 내린 햇볕이니 그 볕내가 못내 향기롭고 볕살이 참 따스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금호강 옆 햇볕이 비치는 아름다운 이곳에 승효상 씨의 두번째 건축물 '다방 물볕'이 완공되었다.


물볕은 교회보다 크지 않은 카페다. 왜냐하면 교회가 주인공이기에 더 드러나서도, 더 높아서도 안된다. 그래서 바깥에서 보아서는 어떤 곳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보다는 단순하면서도 우직한 하양무학로교회가 먼저 시선을 잡아채기 때문에 무학로교회를 나올 때에야 물볕이 눈에 들어온다.


하양무학로교회와 다방 물볕(갈색 건물) 모형도


나도 그랬다. 멀리서 수녀님 두 분이 찾아오셔서 하양의 자랑 무학로교회로 모시고 갔다. 거룩한 성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하얀 옷을 입으신 어른이 들어오셨다. '너무 떠들었나' 싶어 걱정했는데 '차 한잔 하고 가시겠습니까?'하고 말씀하셨다. 알고보니 무학로교회 조원경 목사님이셨다.


덕분에 무학로교회 안채에 해당하는 한옥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한 목사님의 집이자 공부하는 서재이자 기도의 공간이었다. 다섯이 앉기는 좁은 곳에서 이름모를 맛있는 차와 초콜렛을 하나씩 주시는 목사님과 무학로교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도 스물다섯이면 충분히 큰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얼굴에서 자유로움이 엿보였다. 너무 커도 일이 많고 욕심이 생길 여지가 많다는 말씀에 공감하며, '이런 신도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멋진 교회를 지을 수 있었지요'하고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교회의 본질은 청빈과 순결 그리고 순종의 삶으로 예수를 본받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밤이면 빛나는 빨간 네온사인 십자가 대신 마음의 십자가가 더 소중하다고 말씀하시는 목사님에게서 편리가 아니라 불편으로 하느님을 만남을 목사님의 방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목사님과 함께 다방 물볕으로 갔다.


물볕은 교회 장로께서 땅을 내 놓은 곳에 승효상 씨가 문화공간으로 커뮤너티를 만들고자 세운 곳이다. 무학로교회에서 기도하고 나와서는 차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고 책 읽고 그림을 감상하는 놀이마당이다.


조원경 목사님과 손님들


조금은 무거운 무학로교회에 있다가 커피 냄새가 좋은 카페에 오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물볕에는 마당이 많다. 책마당, 안마당, 뒷마당, 사이마당, 골목마당으로 오픈된 공간이 물볕의 모습을 다채롭게 만든다.


골목마당


책마당에는 자연채광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외국에서 발간된 승효상 씨의 책들을 보고 읽고 살 수 있다.


'오래된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승효상 씨는 물볕을 지을 때 이웃한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살려 전시실로 쓰게 만들었다.


뒷마당


 것과  것의 조화자연과 인공사람과 건물이 함께 하는 물볕에서만   있는 오래된 새로움이다


물볕 다방 안에서  개의  창으로 해가 지는 석양이 비칠 때면 공간이 가진 신비함을 넘어서 거룩함에로 나아갈  있다.


건물주인 장로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좋은 땅에 높은 건물을 짓고 싶었는데 승효상 씨를 만난 뒤에 마음을 바꿔 문화공간 다방 물볕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하는 모습에 흥분된 생기가 느껴졌다. 무릇 자신을 넘어선 어떤 큰 것, 좋은 것 앞에서 느끼는 신선함이리라.


그분은 다방 물볕에서 30미터 떨어진 자신의 이층집을 승효상 씨의 뜻에 따라 게스트 하우스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누구라도 하양무학로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다방 물볕에서 쉬다가 원하면 하룻밤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수도사의 방처럼 작고 겸손한 공간에 자신도 한 켠을 쓰게 될 것이라 했다.


"(거룩한) 공간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하고 내가 말하니 "맞습니다." 하고 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양은 이제 더 이상 대구의 변두리 시골이 아니다. 한국 최고의 건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파리이며, 영적인 공간을 찾는 사람에게는 로마이며, 하양에 사는 사람에게는 하양의 다른 이름, 살아있는 물볕이다.


다방 물볕



매거진의 이전글 작가와 출판사와의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