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눈시앗따 수녀님

살아있기에 아름다운 사람 1

지난 십오년동안 943명의 살아있는 사람(Living Person)이 마라톤을 통해 자신의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이웃을 위해 땀을 흘렸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있기에 아름다운 사람>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2014년 주교님 비서로 계셨던 김성래(하상바오로) 신부님께서 교구청 수녀님들을 마라톤에 초대했고, 그 당시 사목국에 근무하신 수녀님께서 그 소식을 샬트르 바오로 수녀원에 전하며 함께 뛰어 보자고 하셔서 5명의 수녀님들과 함께 ‘살아있는 사람’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초보자들이라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 연습을 했고 처음으로 경주국제동아마라톤대회에 출전했다. 전국에서 온 수많은 마라토너들의 건강한 기운들을 받으며 숨 가쁘게 뛴 10km, 그 성취감과 감동이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뛰는 중간 중간 만난 노란색 ‘살아있는 사람’들과 스쳐가며 손을 들어 한 격려는 큰 힘이 되었고 하나라는 느낌은 기쁨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난한 어린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두 배의 기쁨이었다.


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마라톤을 하는 모든 분들이 다 멋지게 보였다. 첫 마라톤의 감동과 기쁨, 이 좋은 기운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년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초대하여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마라톤을 하고 있다. 어느덧 올해로 5주년을 맞았다.




2015년 제주국제마라톤 대회에서 처음으로 하프에 도전했다.‘하프’ 신청을 해놓고 걱정이 되었다. 그 걱정은 나를 신학교 운동장으로 신천대로변 산책로 길로 짬짬이 걷거나 뛰게 했다. 그 시간들이 좋았다. 마라톤 코스가 아름다운 제주 바닷가를 달리게 되어 있어 낭만적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처음 몇 킬로는 헐떡이는 숨과 싸워야 했고, 반환점을 돌면서부터는 함께 뛰던 사람들이 하나 둘 멀어져 가 결국 혼자 뛰고 있었다. 제주의 그 아름다운 바다는 단 한 번도 눈에 들어 온 적이 없고, 태양은 왜 그렇게 따갑게 나를 괴롭히는지…… 숨은 평정을 찾았지만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다. 그 무거운 다리가 뛰는 것이지 걷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마치 끝날 것 같지 않을 시간 속을 가고 있는 듯했다. 마라톤이 왜 자신과의 싸움인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하루키 작가의 미래의 묘지명처럼 나의 목표도 걷는 것보다 느리게 뛰어도 걷지 않는 것이었다. 힘겨운 시간을 인내롭게 달렸다. 그 더딘 한걸음 한걸음은 나를 결승선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 성취감과 기쁨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나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두고두고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IMG_7329.JPG '살아있는 사람 11'로 하프코스를 완주하면서, 2015년


오년동안 달리면서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


2014년 첫 경주동아마라톤대회에서 만난 나의 첫 페이스 메이커에게 감사드린다. 처음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은 사람을 설레게도 하고 긴장되게 한다. 그날도 그랬다. 처음 출발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밀려 무난히 달렸는데 3km 쯤 되니 지쳐 왔다. 그 즈음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누가 옆에서 같이 뛰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뛰면서 인사도 나누고 얘기를 들어보니 병의 치료로 좋아하던 마라톤을 오랫동안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다시 짧은 거리부터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분은 뛰면서 중간 중간 물 마시는 것, 물 스펀지 사용하는 방법, 내리막과 오르막에서 페이스 조절하는 방법들을 알려주셨다. 결승선이 저 멀리 보이는 곳에서 “저는 빨리 갑니다. 끝까지 파이팅 하세요!” 하고 달려가셨다. 앞을 보고 뛰고 있어서 얼굴도 자세히 보지를 못했지만 길 위에서 만난 그분의 용기 있는 삶의 도전들이 멋지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또 한 사람의 ‘살아있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오래도록 긴 여운을 남겼다.


2015년 제주마라톤대회에서 함께 뛰었던 큰집 조카를 2016년 춘천마라톤대회에 다시 초대했다. 대학생인 조카 엘리야는 중학교 때 병원의 의료사고로 앞을 못 본다. 내가 알고 있는 조카 엘리아는 본인의 시련과 아픔을 통해 좌절보다는 긍정적인 쪽으로 길을 나선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아이이다. 그는 벌써 ‘살아있는 사람’이다. 1년 안 본 사이 살이 많이 쪄 있었다. 연습양이 너무 적었다고 얘기를 해서 제대로 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본인이 선택을 했고 자유에 맡겼다. 춘천마라톤을 엘리야와 함께 뛰었다. 처음엔 함께 뛰었고 엘리야가 지치면서는 손을 잡고 앞서 뛰고 있었다. 얼른 따라 오길 바랬지만 엘리야는 진짜 숨이 목에까지 차서 몇 번이고 서서 숨을 고르고 또 고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겨우 결승선에 들어왔다. 조카도 힘들었지만 나도 힘이 배로 들었다. 어느 지점부터 조카 스스로의 의지로 뛰었다기보다 나의 의지로 먼 길을 끌고 온 것 같아서 힘들고 기쁘지가 않았다. 나의 욕심이 눈높이를 맞추어 주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뛰었으면 좋았을 것을……아쉬웠다. 춘천마라톤대회는 나를 깊이 성찰하게 했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 2019년 청도 마라톤대회에서 1997년 첫 소임지인 김해성당에서 처음으로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준비시켰던 스테파니아 자매님을 23년 만에 ‘살아있는 사람’ 멤버로 만났다. 자매님과 함께 온 가족들은 기뻐서 껑충껑충 뛰었다. 참 신기했다. 나이도 있으신데 삶을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살아있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기쁘고 감사했다.




수도자로 마라톤을 뛴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4년 처음 뛴 경주동아마라톤대회 날은 ‘전교주일’이었다. 처음이고 더군다나 수도복을 입고 뛴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우~ 와~ 수녀님들도 뛴다.”, “화이팅 하세요! 멋져요!” 거리 응원을 나온 학생들의 환호소리에 어깨가 으쓱해져서 더 힘을 내어 뛴 기억이 난다. 그날 함께 뛴 5명의 수녀들은 경주시민들과 전국에서 온 마라토너들에게 달리기라는 공통의 언어로 하느님을 긍정적으로 전한 멋진 ‘전교주일’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수도복을 입고 마라톤을 하면 개인이 아닌 가톨릭 수도자가 뛰는 것이고 강요하지 않는 살아있음으로 하느님을 전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지향을 가졌다.뛰는 것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 노력들은 몸의 지구력과 인내심과 건강을 키워주고, 그 에너지들은 수도생활에서 더욱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픈 활력을 더해준다. 정적인 생활을 하는 수도자인 나에게 육적으로 몸을 풀어주면서 영적인 몸도 함께 풀어주는 체험을 하게 한다. 그래서 달리기가 좋은가 보다.


사람들은 수도생활이 정적이라 뛰는 것을 잘 못한다는 고정 관념들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이미지를 가진 내가 함께 뛰자고 권유하면 수녀님도 뛰는데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쉽게 가지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도자가 참 유리하다ㅎㅎ 나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마라톤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한번도 도전해보지 않은 새로운 몸의 언어를 통해 하느님 안에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눌 수 있어 기쁘고 참 좋다.


IMG_7453.JPG 자전거를 경품으로 타다,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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