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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도 달린다!

왕초보 라이더의 연휴 배달기

새해를 시작하며 뭐든 도움이 되는 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 뼘이라도 나아가는 삶, 한 치라도 깨끗하게 만드는 삶을 살고 싶었다.


공자는 나이 오십이면 지천명(知天命), 곧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고 했는데 하늘이 내게 바라는 일은 무엇일까?


어느날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청년이 말했다. 


“설날과 추석에는 배달을 해 주는 라이더가 없어서 가게 문을 닫아야 해요. 그리고 공휴일에는 라이더 비를 추가로 더 줘야 하고요.” 


'바로 이것이 하늘이 원하는 일이구나!' 생각하며, 설연휴 기간 이틀 라이더로 자원했다. 




‘체험! 삶의 현장’에는 비길 바가 아니지만 내가 찾은 현장은 현실이었다. 거짓이나 위선 없는 생생한 삶으로 짧은 거리는 바프와 함께 달리고 먼 거리는 내 차로 배달했다.


길에서 만나는 무수한 오토바이 라이더들과 왠지 모를 동질감에 손을 들어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시간이 돈이기에 서둘러 가야 하고 때론 신호등도 무시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보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하는 라이더를 꿈꾸며 혹시 팁을 주면 어떻게할까 걱정했지만 현실은 많이 달랐다. 사람들은 별 표정이 없었고 때론 내 존재 자체가 작아지는 느낌도 들었다.


설날 6건, 오늘 6건을 배달했다.



은퇴하면 라이더로 제2의 인생을 꿈꿔볼까?


세상에 쉬운 일이 없음을 배운다. 코로나로 어려워진 가게를 운영하는 점장의 마음도 그렇고, 짬을 내어 열일하는 알바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일이 있을 때는 그나마 다행이다. 하루 종일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문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척 힘들 것 같다.


배달 가면서 백미터 넘게 도로 한차선을 막고 차로 긴 줄을 서 있는 스타벅스 DT를 보는 마음은 좋지 않았다. 


우리는 동네 카페에 들어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정을 건넨 뒤 따듯한 커피를 마시기보다 남들처럼 영혼 없는 커피 마시기를 따라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커피 맛의 팔할은 마음이다. 


<카모메 식당>이라는 일본 영화에 보면 커피를 만들며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는데 끝없이 밀려드는 DT에서 그런 것이 가능할까 모르겠다. 


종종 동네 커피집에 가서 을 나누며 커피를 마실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왕초보 라이더로 이틀동안 배달을 하면서 부끄러워하거나 겁먹거나 미안해하지 말고 그냥 뭐든 해 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늘 변해야 하고, 그 길에서 누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래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새해에 바라는 일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행하라.”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했다.


먼저 이웃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사랑하자. 그러면 그들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으니까!


고객이 커피를 받고 웃을 때, 눈 마주치며 고맙다고 말할 때 힘이 많이 났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몸에 밴 커피향이 그윽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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