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끌벅적한 일이 지나가자 살아있는 사람의 십년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뛰었던 327명의 살아있는 사람들(매년 살아있는 사람에게 고유번호를 부여한다)과 다양한 마라톤 대회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좀 더 본질적으로 내가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고 있었다.
달린다는 본질적인 행위에서 발견하는 사제의 삶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소설가로서의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과 닮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삼십 년 넘게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한다. 그가 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는 그의 문학의 원천이 달리기임을 선언하는 책이다.
33세에 달리기를 시작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나 역시 33세에 마라톤에 입문했고, 달리기의 인문학적 매니페스토라 불리울만한 이 책은 내가 자주 달리기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책이다. 그의 책은 나로 하여금 달리기에 대한 목소리를 가질 수 있게 만들었고 달리기의 의미를 찾게 해 주었다. 그는 말한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 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는 몸이 튼튼하거나 운동에 소질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달리는 것이 그에게 맞기 때문에', 그리고 '이건 그의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딱히 소질이 있어 달리기를 한다기보다 달리는 일이야말로 사제로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자신의 혼돈마저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언어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묵한 집중력이며, 좌절하는 일 없는 지속력이며, 견고하게 제도화된 의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자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신체력이다.
나에게 사제직은 직업이 아니다. 그 때문에 더 치열한 집중력과 지속력, 의식, 그리고 신체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의 삶 전체가 바로 내가 누구인지 말하기 때문이다.
사제에게는 그만의 시간 리듬이 있다. 혼자서 지키고 이루어내야 할 일이 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바치는 성무일도와 미사, 그리고 미사 때 강론을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복음 묵상. 특히 복음 묵상에서는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 단위로 사제는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고 신자들의 영적 이익을 위해 무엇인가를 길어 올려야 한다.
사제가 소설가처럼 '작가의 벽(Writer's block)'에 부딪치게 된다면 신자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루카 5,4)고 스승께서는 요구하시지만 매일 그렇게 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깊은 데로 저어 나가 지속적으로 영혼을 울리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피지컬한 기초가 필요하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사제는 매일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이 가져오는 일상의 잡다한 이야기에서부터 유아세례와 결혼과 같은 신나는 이야기, 나아가 그만큼 중요하고 심각하고 무거운 고통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모든 것이 듣는 이의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저 듣는 것만 해도 힘이 드는데 많은 경우에 신자들을 위한 사목이란 '함께함'이다. 어떤 자리에 사제로서 함께 하는 것, 그것으로 그 시간을 지지하고 그 사람을 응원하는 함께함 역시 사제에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래서 사제는 먼저 건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한다. "육체적으로 절제하는 것은 소설가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일입니다...그리고 그 강고한 의지를 장기간에 걸쳐 지속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그의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러티(quality)가 문제가 됩니다. 일단은 만전을 기하며 살아갈 것. '만전을 기하며 살아간다'라는 것은 다시 말해 영혼을 담는 '틀'인 육체를 어느 정도 확립하고 그것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경우) 지겨울 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입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육체를 잘 유지해 나가는 노력 없이, 의지만을 혹은 영혼만을 전향적으로 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생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감사한다. 작가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위해 영혼을 담는 틀인 육체를 강고하게 유지하는 일의 중요함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쓴 글에서 드러나는 그의 삶에 대한 가치와 자세는 바로 사제인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앉아서 글을 쓰기 위해 매일 달리는 무리카미 하루키는 매일 같은 시간에 기도하고 영적인 성찰을 해야 하는 사제가 갖추어야 할 육적인 소양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다. 단 한번의 성공이 아니라 지겨울 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에서 만전을 기해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육체를 잘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그는 나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살아있는 사람은 열살이 되었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좀 더 크게 상상하고 기억에 남게 뛰고 싶었다. 삼년간 참가했던 경주국제마라톤에서 벗어나 새로운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에서 가장 신비로운 곳에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