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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돌아온 자, 레버넌트

브런치 글쓰기는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코로나 확진 후 일주일간의 격리를 마치고 다시 만난 동료신부들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나는 죽음에서 돌아온 자, 레버넌트다!"


레오나르도 드 카프리오가 주연한 2016년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떠올랐고, 그 마음 한편에는 얼마전에 홀연히 세상을 떠난 형제에게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지난 주일, 나는 오랜만에 사제관을 떠났다. 코로나 격리로 답답했던 하양을 떠나 먼 곳에 가고 싶었고, 예전부터 가기로 약속했던 경주에서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였다. 


동료신부들과 덕동호 주변을 자전거로 돌았다. 조용하고 푸르고 아름다운 코스였다. 체력이 다할 때쯤 커피명가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맛 또한 일품이었다. 


그렇게 멋진 외출을 마치고 경주 인성수련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보문호수 상가를 지나던 나는 불법 좌회전하던 차와 부딪쳤다. 


저 멀리 반대편에 있었던 차가 순식간에 내 눈앞에 나타났고 나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잡았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자전거 뒷바퀴가 들렸고 내 몸은 자전거를 떠나 허공으로 날아 급 정지한 차량 위로 떨어졌다. 머리로 본네트를 박았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


스물 한 살 청년이 거칠게 몰던 스포츠카는 그렇게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뻔 했다. 다행히 헬멧을 쓰고 있었고 브레이크가 제때 작동했기에 나는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찌그러진 본네트를 보고 있자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


미안했다. 


함부로 죽음에서 돌아온 자라고 말한 것, 그리고 갑자기 모두의 곁을 떠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브런치 글을 어디까지 쓸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내 삶의 모든 사건, 생각, 감정을 다 담아낼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말하지 않아서, 표현하지 못해서, 알 수가 없어서 전할 수 없는 내 삶의 일부라도 전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삶이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면 오늘의 글쓰기는 무의미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진짜 레버넌트다!


죽음에서 돌아왔고, 다시 살아 있고, 그 덕에 미안하고 고맙다.


오늘 죽어도 뭐라 할 수 없는 인생에서 우리가 남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쓰는 브런치의 모든 글, 내 삶의 이유를 한가지로 말하자면, '살아있음의 은총, 하느님께 대한 찬양, 그리고 사랑하는 이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다.


여느때와 다르게 더욱 고요한 밤, 무척이나 쑤신 목을 부여잡고 말하고 싶다.


"여러분, 정말 미안할 뻔 했습니다. 잘 살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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