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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중간고사 후기

지난 금요일 중간고사를 마친 약대생들과 예비자 교리 후에 회식 시간을 가졌다. 대학에 갓 들어왔거나 약대에 편입해서 첫 시험을 친 학생들 모두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다. '이제 열심히 하겠어요.', '기말고사 때는 반드시...' 하고 결의를 다지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론, (부끄럽지 않게) '라떼는 말이야'하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잘 참았다.




30년 전 이맘 때 나도 첫 대학 중간고사를 쳤었다. 그때는 치열한 대학입시에 대한 보상심리 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와 자유 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기대와 갈망으로 시험은 발에 떨어진 불똥 같은 것이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올 F를 받아가며 학생운동에 투신하고 있었고, 대학은 시험 외에도 너무나 할 것이 많았다. 시험보다는 축제, 현실보다는 이상, 친구보다는 연인이 더 가깝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을 보며 나도 그런 대학생활을 하고 싶었다.



즐거운 추억이 떠오른다. 마음 맞는 경상대 동기들과 합심해서 'WE'라는 모임을 만들어 직접 전단지를 학우들에게 돌려 경상대 뿐만 아니라 사회대와 인문대까지 포함해서 남자 넷, 여자 넷이 모였다.


WE는 '우리'이면서 불어로 'Yes'를 뜻했고 젊은 우리가 세상과 삶을 긍정하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출범식을 한답시고 다들 정장을 입고 대명동 계대 술집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WE는 정기적인 독서토론 모임 뿐만 아니라 여행도 같었고, 우리 가운데는 커플도 생겼다.


돌아보니 30년 한 세대가 나를 휙 지나가 버렸다. 얼마전 오른 팔공산은 그대로인데 나만 30년 세월을 더해 산을 오르면서 더 헐떡이고 있었다.


그때 그 산은 내게 '사랑이냐, 혁명이냐?'를 물었었는데 이제 산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하고 나를 맞이할 뿐이다.


그 시절 희망이었던 386세대는 이제 586이 되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안달난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어 버렸다. 세상을 바꿀 것만 같았던 그 시절 진보는 그도 어쩔 수 없는 인륜과 안주하려는 인간 본성을 뛰어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어 씁쓸하다.


30년전 즐겨 부르던 운동권 노래를 부르며 산을 내려왔다. 울려퍼지던 함성과 깃발, 뜨거웠던 가슴은 어디가고 나이든 남자가 홀로 산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산노을이 그를 마중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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