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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꾸는 꿈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마라톤

음력으로 5월 8일 오늘은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감사하게도 부처님 오신 날이자 군위 장날이기도 했다.


어떤 신부님의 말씀처럼, 부처님 오신 날은 비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고 말 그대로 화창하고 선선해 달리기에 좋은 날이었다.


이렇게 좋은 날 '100인 온기나눔운동 마라톤 대회'를 뛰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러너들이 군위 청소년 수련원에 모였다. 멀리 제주에서 온 가톨릭 마라톤 동호회 회장님도 계셨고 예전 대회에서 만났던 반가운 얼굴들도 있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감사미사를 바치는 순간, 자연과 사람, 과거와 현재, 사랑과 실천이 하나됨을 느낄  있어  좋았다.



하지만 하프마라톤이 내게 그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적은 처음이었다. 같이 이번 마라톤을 뛰기로 했던 크리스토폴 형제의 별세와 코로나 확진, 거기다가 교통사고로 인해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등장한 박비오 신부님! 발목이 좋지 않아 한동안 달리기를 쉬었고 실제로 이번 마라톤은 안 뛰기로 마음 먹고 있었던 신부님께 나의 사정을 설명했더니 기꺼이 같이 뛰겠다고 오셨다.


오직 하프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두 신부가 나란히 아침 9시 55분에 출발했다.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군위읍을 거쳐 군위 IC 부근에서 턴을 했다.


생각하기에는 하프 마라톤의 반환점인 것 같았는데 거리는 상당히 못 미치는 지점이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돌아갈 길만을 생각하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1킬로 4분 30초 페이스로 한동안 신부님과 질주를 했다.


그런데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할 길에서 코스는 턴이 아니라 계속 이어졌고 우리는 그제서야 겨우 10킬로미터를 달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라톤은 페이스를 잘 배분하는 것이 관건인데 우리는 오버 페이스를 했고 남은 10킬로미터는 그 값을 치러야 했다.


더욱이 발목이 좋지 않아 운동을 한동안 쉬었던 신부님께는 하프 코스는  길이었던 같다. 연신 소리를 지르며 파이팅을 했지만 몸이 무거워 생각만큼 속도를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호흡과 발을 맞춰 결국 골인 지점에 다다를  있었다.



첫 하프 마라톤을 뛸 때처럼 고통스러웠지만 뿌듯한 레이스를 했다는 신부님과 뛰면서 나는 동행의 의미를 새길 수 있었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동무가 있으면 갈 수 있고 어려울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살아있다면 계속 달려야 합니다> '나의 꿈'에서 쓴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마라톤 대회"는 이렇게 현실로 이루어졌다. 사실 나는 꿈만 꾸었고 모든 준비와 일은 대구 가톨릭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이 맡아서 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전한다.


온기 나눔으로 미사 때 모은 봉헌금 3,429,000원은 모두 무료급식소인 요셉의 집에 기부한다고 한다. 더없이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유산인 사랑과 온기를 나누었던 오늘 하루, 나는 먼 길이라도 함께 가면 갈 수 있음을 다시한번 체험했다. 그리고 사랑이 머무는 자리에는 기쁨이 있음을, 우리는 공동체일 때 더없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노해의 글을 새기며 오늘 하루를 정리한다.


꿈을 혼자서 꾸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 꿈을 모두 함께 나누어 꾸면 반드시 현실이 된다. 꿈을 머리나 입으로만 꾼다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 몸으로 자기 몫의 고통으로 받아 나가면 반드시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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