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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새로워지는 인간

살아있는 사람 18th

작년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린 열일곱번째 살아있는 사람 20킬로미터 우승자를 알고 계신지요?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제대 위에 있습니다. 바로 박비오 신부님과 저입니다.


박비오 신부님과 결승선을 함께 통과하면서 2021/10/24


박비오 신부님께서는 그냥 달리는 신부님이 아닙니다. 신부님께서는 달리면서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그 경험을 담아 최근에 '엔테오스', 곧 '하느님 안의 열정'이라는 책을 내신 진정한 러너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신부님께서는 효성초등학교 학생들과 5킬로미터를 걸으셨습니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교장신부님의 마음은 알지만 실은 발 부상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전에 신부님과 긴 통화를 했었는데 앞으로 신부님께서는 발 부상 때문에 장거리 달리기를 할 수 없게 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 아픈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작년에 박비오 신부님과 결승선을 최초로 통과한 후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팔월 말 인성멘토 선발캠프에서 자신감 스피치를 선 보일 때였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왜? 나는 그 이유를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신념, 용기, 그리고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하고 스피치를 한 후 아주 세게 점프를 하고 착지를 했는데 뭔가 몸이 이상했습니다. 사타구니 부근이 불편해서 보니 탈장인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병원을 가서 탈장 진단을 받고 그 다음 주 월요일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산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도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니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탈장수술 후 마취에서 회복되는 12시간 동안 꼼짝도 못했고, 3주간 운동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 저의 몸에 대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3주 뒤부터는 달리기를 천천히 시작했습니다만 절개를 한 복부 통증이 느껴져 속도와 강도를 줄여야 했습니다.


누구나 몸이 아픕니다. 몸과 함께 사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몸은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우리의 몸이 한결같지 않음을 늘 느낍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몸이 그렇고, 몇해 전 자기 사진을 보면 너무 젊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쇠퇴해가고 있습니다. 작년 20킬로미터 우승자인 두 사제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그럼 저물어가는 육체를 보며 안타까워만 해야 할까요? 아니면 성형이나 보톡스처럼 인위적인 방법으로 쇠퇴해가지 않는 것처럼 꾸며야 할까요?


다시, 한번에 한걸음씩을 생각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결국 우리는 한번에 한걸음씩밖에 못갑니다. 한번에 한호흡씩, 한번에 한가지씩, 한번에 한사람씩, 이것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 방식입니다.


살아있는 사람 마라톤 대회도 그러했습니다. 한번에 한대회씩, 그렇게 열여덟번의 대회를, 그해가 마지막인 것처럼 준비했습니다.


때론 위기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전국 어디에도 마라톤 대회가 열리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어 '우리끼리 한번 해 보자!'하는 마음으로 군위마라톤대회를 직접 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해서 놀랐습니다.


2021년 작년에는 우리 대학에서 대회를 열었는데 코로나가 심해져서 인원제한으로 신청받은 400명이 모이는 시간도 다르게 해서 따로 뛰었습니다. 올해 열여덟번째 살아있는 사람은 코로나를 벗어나 이렇게 800여명 가까운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럼, 200, 400, 800...내년에는 1,600명이 될까요?(생각만해도 걱정됩니다!)




한번에 한걸음씩,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나무 주인이 허락한 것처럼 올해가 마지막해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회개의 마지막 시기입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루카 13,8-9).


그러므로 1독서의 말씀처럼 다가오는 한해동안,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에페 4,15-16).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이란 온몸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안 아픈 것이 아니라 아파도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도 화내지 않고, 상처입어도 다시 회복하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이란 온몸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달릴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고, 다친 부위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천천히 다시 뛰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그분 덕분'입니다. 우리는 그분 덕분에 숨 쉬고 움직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몸은 비록 나이가 들어 쇠퇴하겠지만 우리의 정신은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2코린4,16).


나날이 새로워지는 살아있는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요한바오로2세 교황님께서는 복음이란 한마디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해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온전히 내어주시며 우리의 온몸이 자라나 사랑으로 성장하도록 이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Do not be afr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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