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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라 부르는 것

끝에서 보이는 희망

사제의 역할은 여러가지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은총을 은총이라 부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리키고, 그것을 은총이라 부르며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은총이라 부르기(Naming Grace)'라 한다.


금요일부터 부부들과 엠이(ME: Marriage Encounter)주말을 함께 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 부부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 부부사이의 갈등, 가정의 시련, 그리고 그만큼의 감사와 기쁨을 안고 2박 3일동안 적극적으로 듣고, 나의 느낌을 나누고, 소통하는 법을 새롭게 배운다.


나는 그들과 함께 고통과 절망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은총이라고 가리키는 일을 하고 있다.


때론 '제게 이런 은총이 주어져도 될까요?' 부끄러워하는 사람에게, 혹은 '저같은 죄인에게...'라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은총이란 거저 주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은총은 불꺼진 방에 갑자기 불이 켜지는 것이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누가 불을, 어떻게 켰는지는 중요치 않다. 갑자기 환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 놀랍고 기쁠 따름이다.


그저 은총에 감사하며 살아가면 된다. 은총에 따라 잘 살아가면 된다.




오늘은 전례력으로 한해의 끝인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땅 끝에 아름답게 서 있는 마라도 성당에서 읽은 민성기 요셉 신부님(1958-2004)의 글이 생각난다.


"이제 시작입니다. 끝은 돌아서면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입니다. 마라도는 우리 땅 끝이 아니라 우리 땅의 시작입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렇게 마라도는 시작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라도에 서면 희망이 보입니다."


우리는 모두 끝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새로 시작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오늘은 어떤 것이든 끝내고 시작하기 좋은 때다. 기꺼이 끝내고 싶은 것들의 이름을 부르며 떠나 보내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것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끝에서야 보이는 희망이 있다. 그것은 마치 연극의 끝장면 같다. 비극과 희극, 오르막과 내리막, 온갖 죄와 기쁨을 겪은 뒤 찾아오는 정화와 감동이다. 등장인물로 모든 잘못을 드러내고 용서받고 눈물을 흘리면서 웃는 것이다. 카타르시스(Catharsis)다.


그제서야 위안을 느끼며 용기내어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들과 하나다. 앞으로도 이들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이것이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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