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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를 오르며

15년만의 등산

15년만이다. 이런 마음을 지고 갓바위를 혼자 오르는 것이.


2007년 미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한국에 돌아와 첫미사를 봉헌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었다. 발령받은 미국 본당으로 돌아갈 때가 다 되어 미 대사관에 종교비자를 신청하고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그만 떨어졌다.


미 대사관 직원이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 4권이 뭐지요?'하고 물었는데 대답을 못했기 때문이다. '사제가 성경도 모르면서 어떻게 사목을 할려고 하느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


교구에 돌아와 보고를 했더니 다시 비자 신청을 하고 신학교에서 대기하라고 하셨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미국간다고 이미 인사를 한터라 정말 조용히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갓바위 가는 버스를 탔다. 갓바위에 도착해 무작정 끝도 없는 계단을 계속 올랐다. 내 잘못으로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모든 것이 불확실했고, 타인의 기대에 내가 못 미친다고 탓했다.


갓바위에 오르자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온화한 갓바위 부처님을 지나 산등성이 바위에 올라 앉았다. 큰 숨을 쉬며 다른 봉우리를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생각한 목적지, 내가 가야할 곳이 아무리 가까이에 있어 보여도 길이 없으면 갈 수 없다. 그 길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산길을 내려다보니 길을 걷는 동안에는 숲에 가려 목적지가 안 보였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걷다보면 결국 목적지에 닿게 될 것이다.


이 두가지 깨달음 덕에 나는 갓바위에서 평화를 안고 내려왔다.




다시 갓바위를 오른다.


나이 오십을 힘겹게 보내며 상처주고 상처입은 나를 안고 갓바위 돌계단을 오른다.


그동안 확실한 목적지라 생각했던 것이 희미해지며 길을 잃은 것 같다.


나의 바램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이 너무 크다.


땀을 비오듯이 쏟으며 도착한 정상에는 기도하는 보살님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모두 어떤 소원을 부처님께 아뢰고 있을까? 더러는 자식을 위해서, 더러는 건강 때문에, 더러는 나처럼 그냥 잃은 길을 찾기도 하겠지.


한가지 뚜렷한 것은 1,365개의 돌계단을 오르는 동안 나의 찌질함, 욕심, 시기 등이 쏟아져 내리는 땀에 어느정도 씻겨내려간 듯 하다는 점이다.


신을 만나러 이렇게 긴 계단을 오르면 그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갓바위 오르는 길과 갓바위 정상


15년전의 나를 만나 조용히 함께 있다가 갓바위를 내려간다.


곧 대림시기인데 고해성사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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