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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띄우는 엽서

대구가톨릭대학교 해외봉사

혹한의 추위를 견디고 있는 고국의 형제자매들을 뒤로 하고 지난 12월 27일 대구가톨릭대학교 학생 20명을 데리고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떠나 왔습니다. 이곳은 최저 21도 최고 32도의 건기로서 일년 중 날씨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미안합니다.


27일 밤 11시 45분에 수도 프놈펜에 도착하여 공항에서 가까운 호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서둘러 푸삿(Pursat)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도시만 벗어나면 금방 논밭이고 황무지고 멀리서는 바다 같은 호수가 펼쳐지는 캄보디아는 '추워서 굶어죽는 곳'이 아니라 '추워서 목말라죽을 수 있는', 어쩌면 복 받은 땅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논에 벼를 심을 때에도 우리나라처럼 모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씨를 뿌리고, 사시사철 열리는 과일나무와 바다 같은 톤레사프 호수에서 나는 민물생선도 풍족하다니 참 복된 땅일 것 같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7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폴 포트라는 한 미치광이 지도자가 만든 킬링필드와 같은 아픈 역사와 주변 나라들의 끊임없는 침략 속에서도 나름의 한과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가는 캄보디아인들은 어쩌면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버스 창 밖으로 펼쳐지는 캄보디아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곳은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냥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잃어버린 듯 했습니다. 뭐 그리 애쓰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는지를 돌아보며 떠나온 곳에 대한 미련과 그곳의 시간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 오히려 해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안나 스쿨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한낮의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도 몇몇 어린이들이 보이더니 이내 많은 아이들이 나타났습니다. 하나같이 수줍은 얼굴로 이방인을 신기하면서도 따듯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쭘립쑤어'라고 불교식으로 손을 합장해서 인사를 하면 아이들도 어김없이 인사를 합니다. 개중에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하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어 신기했습니다.


어린이는 스승입니다. 한번도 본 적도 없고 말도 안 통하지만 그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이들에게 합당한 사람인가?' '이 어린이들처럼 맑고 밝은가?' '사심을 품고 살지는 않는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린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



수녀님과 봉사자들은 선배입니다. 이역만리 아무것도 모르는, 한마디 말도 제대로 내뱉을 수 없는 곳에 와 10년, 12년을 살고 계신 수녀님들을 뵙고, 봉사자로 1년을 살고 다시 지원해서 1년을 더 살고 있는 청년을 보며 내 안에 갇혀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제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남을 위해 자기 것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내어주는데 주저하는 우리는 이렇게 모든 것을 내어놓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대단한만큼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선생입니다. 저는 스무명의 학생들을 인솔하는 사람으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외국에 처음 나가보는 학생, 그저 해외봉사를 해외여행처럼 가려는 학생, 다른 학생들과 팀워크가 어려운 학생들 걱정만 했었는데 이들은 보란듯이 오늘 안나스쿨 어린이들, 중고등학생들과의 진실한 만남으로 제 모든 걱정을 날려보내 버렸습니다.



준비한 프로그램을 잘하고 못하고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들이 진심으로 이곳 어린이들을 만나고 존중하고 배우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선생이랍시고 미리 걱정한 제가 더 못나 보였습니다.


늦은 밤, 우리 학생들과 한방에 둘러앉아 하루에 대해 이야기한 뒤에 혼자 별을 보러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더 빛나는 별, 그 별이 캄보디아 밤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미지의 땅에서 수많은 별을 보며 살아있다는 것이, 멋진 별을 보러 나갈 수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습니다.


이곳은 캄보디아입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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